한국일보

옥가락지의 추억

2017-08-11 (금) 헬렌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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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큰 손녀가 대학을 졸업했다. 큰아들의 맏딸 졸업식에 참석하면서 문득 수십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 옛날 일이 엊그제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남편의 위로 형님이 두분 계셨지만 아들이 없어서 우리 아들이 장손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었을 때 남편은 사업차 미국에 체류 중이고, 나는 산후조리차 친정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칠순이시던 시어머님이 백일잔치에 참석하셔서 뭔가를 건네 주셨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싸고 또 싼 것을 꺼내시더니 “내가 우리 시어머님에게서 받은 옥가락지란다” 하시며 내 손가락에 끼어 주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위의 두 형님 제쳐놓고 장손을 낳은 나에게 귀한 옥가락지를 주신 것이다. 당시는 아들이 우선이던 시대였기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상자를 열고 “사돈. 정말 수고하셨어요“ 하시며 친정어머니께 예쁜 한복 한벌을 선물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신 분들... 나는 50년이 넘은 빛바랜 사진첩을 열어보며 옛날로 돌아가 그때의 일들을 그려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진첩을 열어보며 그때 시어머님의 넓으신 아량과 깊은 뜻을 나이 들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손자가 태어나 백일이 되었을 때 나도 어머님이 하신대로 며느리에게 옥가락지를 끼어주었다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되는 옥가락지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귀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살아오면서 한때는 보석 욕심에 반지들을 사모기도 했지만 지나보니 다 허망하다. 지금은 나이 탓에 손마디가 굵어져서 어떤 반지도 손가락에 들어가지를 않는다. 돌아보면 다른 것 다 제치고 어머님이 주신 옥가락지가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이제는 낡은 사진첩도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낡은 사진첩을 넘기며 이렇게 옛날을 추억한다. 다음 세대에 줄 기억에 남을 선물을 이 사진첩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헬렌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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