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무심코 신문을 보다가 “태권도단체 ‘부정적’ 이름을 길바닥에 걷어 차버리다” 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 왔다. 태권도라면 당연히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라 무슨 얘기인가 하고 관심 있게 읽어 보았다. 축구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있듯이 태권도에는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소셜미디어 활동이 일상화됨에 따라 이 단체의 영문약어 ‘WTF’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영어권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자주 쓰는 고약한 욕의 약어이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이런 부정적인 말이 연상되는 단체명 때문에 고민해 오던 연맹 측이 최근 한국에서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가 열리기 전날 이 명칭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는 ‘WTF’ 대신 ‘World Taekwondo’로 줄여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중 한참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부분이 있었다. 태권도연맹총재가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는데, 총재의 이름을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히 한국사람인 것 같은데, 성도 이름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 ‘Chungwon Choue’라고 나와 있는데, 외국인들이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만 한국인으로서는 그 이름이 ‘조충원’인지, ‘조중원’인지, ‘조청원’인지, ‘조정원’인지? 아니면 ‘최 충원(청원, 중원,정원)인지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었다.
한국이름을 영어로 표기한 걸 보면 원래 한국이름을 짐작할 수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ㅜ”와 “ㅓ”를 표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U”를 쓰는데서 오는 혼란이다. 엄연히 다른 발음인 두 모음을 영어로 옮길 때는 같은 “U”로 표기하니 어느 게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심지어 한 이름에서도 이렇게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한 예로 아주 흔한 남자 이름인 “정훈”의 경우 “Jung Hun”이나 “Chung Hun”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경우 정훈, 정헌, 중훈, 중헌, 충훈, 충헌, 충훈, 청헌, 청훈 중 어느 게 맞는 이름인지 알 길이 없다. 같은 “U”를 써 놓고 하나는 “ㅓ”로, 다른 하나는 “ㅜ”로 알아서 읽을 거라고 생각하는 무신경이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이름은 정숙 정순 선숙 성수 헌수 성훈 철수 등 무수히 많다. ‘정’ 씨의 경우에도 “Chung” “Jung”으로 많이 쓰는 데, 이름 중에 “ㅜ”나 “ㅓ”가 들어 갈 경우 일관성 없이 쓰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야 그렇게 써 놓고도 정확하게 읽겠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알아서 읽어 주겠거니 하고 기대하는 건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무신경이다.
한국 음식점에서 영어로 표기해 놓은 음식 이름들도 도무지 일관성이 없고 제각각이다. 그런가 하면 ‘찌개”를 표기할 때는 어딜 가나 “JJi Gae”라고 적혀 있다. 한글에서 자음을 겹쳐서 쓰면 경음이 된다고 해서 영어도 그렇게 써 놓으면 그런 식으로 읽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어책 어디에서 그런 식으로 읽히는 단어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말도 채 깨우치기 전에 영어를 가르친다고 온 국민이 난리를 치는 것이 국제화고 세계화가 아니다. 우리말을 세계 공용의 로마자 알파벳으로 제대로 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 하는 무신경에서 제발 좀 깨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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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택 / 산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