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군 사모님’의 갑질

2017-08-0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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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직 사단장이 사병들을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더니 이번에는 사성장군 부인에 의한 갑질이 폭로되면서 시끄럽다. 한국의 군인권센터 발표에 따르면 이 육군대장 부인은 “공관병, 조리병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인권을 침해하고 갑질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공군사병으로 복무 중인 자기 아들이 휴가차 오면 공관병들에게 아들 속옷을 빨게 하고 다림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패악을 부리는 등 인권센터가 밝힌 갑질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수시로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호출용 전자팔찌를 채웠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사단장에 의한 갑질도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장군 부인에 의한 갑질은 이보다 한층 더 심각한 문제로 봐야 한다. 남편의 공적인 지위와 권력을 부인이 사적으로 남용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장군 부인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젊은 청년들을 머슴처럼 부렸다. 이런 행태는 한국사회 전반에 널리 만연돼 있지만 군이라는 폐쇄된 조직 내에서 특히 심하다.

군의 많은 악습들이 사라지기는 했어도 진급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들 계급은 자연스레 배우자들 계급이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수십 년 간 생활하다 보면 마치 자신이 장군인 양 착각하는 장군 부인들이 얼마든 있을 수 있다. 한 전직 대통령 부인은 이런 ‘장군 사모님’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러니 “남편이 사성장군이면 부인은 오성장군, 남편이 사장이면 부인은 회장, 남편이 코치면 부인은 감독”이라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꼬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자치단체장 배우자들의 갑질 또한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관용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애교수준이다. 공무원들에게 개인 심부름을 시키고 공적 예산으로 부부출장을 가는 등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개념 없는 행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의 의식수준을 드러내 주는 고질병이라 할 수 있다.

부인의 갑질이 문제가 되자 사성장군은 사과와 함께 전역신청을 했다. 갑질 대부분이 부인의 행위였다 해도 남편의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공적인 자리에 앉고 힘을 부여 받을 때는 주변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할 책무도 함께 주어진 것이다. 사성장군은 대한민국에 단 8명밖에 없는 명예로운 자리다. 하지만 배우자 관리를 못하는 바람에 그의 군 생활은 불명예로 끝나게 됐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보도들을 살펴보니 장군 내외는 ‘교회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 신자인 것 같다. 새벽기도를 위해 일찍 일어나는 장군 수발 때문에 병사들이 과로를 하고, 공관병들이 이층에 있는 성경책을 자동차에 제때 갖다 놓지 않았다고 부인에게 폭언을 들었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서는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장군과 그의 부인은 막내아들 또래였을 공관병들을 좀 더 따스하게 대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장군 사모님’의 갑질은 한국사회의 병폐와 위선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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