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보험 만기’ 퇴출 당하는 장수 노인들

2017-07-31 (월)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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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시대 예상 못한 법정 다툼

▶ 대부분 표준 약관 100세까지만 유효

의학 발달과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로 조만간 백수는 요즘의 칠순 정도로 여기질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 인간의 수명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분야가 있다. 바로 생명보험업계다. 예전만 해도 100세는 꿈의 숫자지만 요즘은 100을 넘기는 사람들이 속속 늘어나면서 생명보험 업계가 생명보험 만기 연령을 100세에서 120세로 늘리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 판매됐던 생명보험중 상당수의 보험의 만기 연령이 100세로 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100세가 넘으면 더 이상 생명보험 유지가 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사망 보험금을 더 이상 지불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백수를 누리는 노인들의 원성이 크다. 대신 그동안 보험에 적립된 저축금이나 현금 가치를 찾아야 하는데 이럴 경우 세금을 내야 한다. 월스트릿 저널은 100세 세대에 접어든 요즘, 생명보험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를 들어 실태를 보도했다.

개리 레빈씨는 올 9월이면 100세 생일을 맞는다. 한세기를 살아왔으니 주변의 축하를 한몸에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축하 분위기 이면에는 우울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생명보험회사에서 그가 가입해 있는 시가 320만 달러에 달하는 2건의 생명보험을 소멸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레빈씨 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생명보험을 가진 장수 노인들의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보험 약관에는 만기 기간이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레빈씨 가족이 가지고 있는 2개의 생명보험 역시 가입자의 나이 100세까지만 유효하게 돼 있다.


100세 만기 연령 규정은 현재 나와 있는 세금 면제 사망금의 세금 유예 저축성 영구 생명보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준 약관이다.

약관에는 사망 보험금의 만기와 가입자가 특정 연령대에 도달하면 그동안 쌓였던 모든 저축금을 일시불로 지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100세 만기 조항이 예전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세를 넘어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100세를 넘은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미국 생명보험 업계의 ‘고민거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연방 센서스국이 2012년 12월 내놓은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0년까지 100세를 넘긴 인구는 5만3,364명이었다. 1990년 3만7,306명, 1980년 3만2,194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만기 연령 연장 불가피

2000년대 중반과 후반이후 보험 업계는 새로운 생명보험 판매 때 표준 만기 연령을 121세로 조정했다. 하지만 100세 만기 연령의 생명보험을 가지고 있는 노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 되지 않고 있다.


일부 생명보험회사들은 이미 예전 판매된 보험을 가지고 있는 나이든 가입자들에게 만기 연령을 늘려주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하지만 레빈씨 가족이 가입한 트랜스아메리카 보험은 이런 연장 제안을 하지 않았다.

오하이오 에크런의 보험 브로커 바마크 파이넌셜 그룹의 로랜스 라브카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예기치 못하게 보험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만기 연령이 95~100세의 예전 생명 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회사에 전화로 문의한 건수만도 최소 7건이 넘는다. 그는 “이런 조항이 거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연방법원 소송 제기

생명보험 커버리지를 잃어버리게 되자 레빈씨 가족은 이달초 메릴랜드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 따르면 보험을 판매한 트랜스아메리카가 1990년 초반 레빈씨의 생명보험을 팔 당시 알면서도 지나치게 낮게 만기 연령을 책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보험사가 판매 당시 생명보험이 마치 ‘평생 커버되는 것’처럼 그릇되게 선전했다고 아울러 주장했다.

소장은 또 레빈씨는 트랜스아메리카에 지난 수십여년간 150만달러 이상의 보험료는 냈다면서 레빈씨가 죽을 때까지 보험이 유효하도록 계약을 수정해야 하며 이에따른 징벌적 배상과 기타 피해등에 대한 배상도 아울러 요구했다.

이에대해 네덜란드 아에곤 NV 산하로 운영되는 트랜스아메리카는 모든 과정이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성명서를 통해 밝혔다.

트랜스아메리카는 성명서에서 “레빈씨가 그의 생명보험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것에 매우 실망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보험약관을 살펴보면 사망 보험금은 그의 나이가 100세 이전 보험 가입일 이전에 숨진 경우에만 지불되게 돼 있다”면서 “우리의 보험 계약의 조건과 약관에 의해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해결책에 의지하는 수백만 고객들에 대한 의무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밝혔다.

약관에 따라 트랜스 아메리카는 레빈씨에게 그동안 쌓여 있는 ‘순수 현금 가치’ 또는 저축금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계약에 명시된 내용이다.

▲캐시 밸류 불확실

레빈씨 가족을 대변하는 제임스 베인브리지 변호사는 얼마나 현금이 쌓여 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업계 전반에 걸쳐 이런 생명보험의 투자 성과는 최근 좋지 않다. 이자 수익이 보험사의 채권 투자 수익과 맞먹는데다가 낮은 이자율이 수익을 악화 시키는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이 소멸됨에 따라 레빈 가족은 더 적은 돈을 받게 될 것이고 또 이렇게 받은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사망 보험금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생명보험을 위한 아메리칸 카운슬의 펄 그래햄 수석 보험계리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보험의 만기 일자는 가입후 수년이 지난후부터 보험에 적당한 현금을 모을 수 있도록 소비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정책이라고 말했다. 연간 보험료 수준과 쌓이는 현금 가치를 계산하려면 “끝나는 시점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래햄은 2000년대 중반 새로운 사망률표가 발표됐는데 여기에는 만기 연령이 121세로 돼 있다면서 이는 사망하기 전 이미 만기 연령에 도달해 보험이 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설명했다.

그는 또 “보험 에이전트도 가입자가 죽기 전에 만기 연령으로 보험이 소멸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또 회사나 보험 가입자 역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빈스씨는 유니버설 라이프로 불리는 보험을 가지고 있다. 이 유니버설 라이프는 종신보험 형태에서 가장 인기 있고 일반적인 보험이다. 종신 보험은 일정 기간동안만 커버해주는 정기 생명보험 즉 텀 라이프와 대비되는 형태다. 텀 라이프는 보통 가입후 10~30년 동안만 커버해주며 현금이 쌓이지 않아 보험료가 매우 저렴하다.

▲보장 문구 문제

레빈씨는 소송에서 트랜스아메리카가 레빈씨에게 평생 보험을 커버해주고 세금 없이 상속자에게 보험금을 물려 줄 수 있음을 보장한다고 선전했다고 주장했다.

소장은 또 트랜스아메리카는 “지난 1980년 만들어진 사망률표가 이미 시기에 맞지 않은 구식이 됐고 소비자의 실제 기대수명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도” 당시의 정해진 만기 연령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소장은 레빈씨 가족은 지난해 트랜스아메리카가 생명보험을 종료 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계약 연장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울러 주장했다.

1919년 9월 베를린에서 태어난 레빈씨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맨몸으로 미국에 도착한 그는 1940년대 페인트 제조 비즈니스를 시작해 볼티모어와 워싱턴 일대에 50개 이상의 소매 업체를 운영했다. 1944년 베니스 레빈과 결혼했고 부인은 2015년 사망했다.

소송을 맡은 베인브리지 변호사는 “100세가 넘는 사람들이 늘어 날 것이고 지역사회와 정부에서 축하는 받고 있다”면서 “그런데 생명보험 업계에서는 이들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johnkim@koreatimes.com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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