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천적 복수국적 ‘맹점’… 한인 2세들만 ‘차별’

2026-03-12 (목) 12:00:00 노세희·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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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출산 예외 ‘악용’
▶ 기득권 병역회피 여전

▶ 이민 자녀들만 불이익
▶ 국적 자동상실제 절실

2005년 제정된 ‘홍준표법’으로 불리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해외 출생 한인 남성의 병역 기피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제도 시행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일부 기득권층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병역 의무를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약 4,000명 내외의 병역 대상자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해외 이민자 가정이 아닌 원정출산이나 단기체류 가정의 자녀들로 추정된다.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에 앞장서고 있는 전종준 변호사는 “국적법 시행령에서 부모가 유학, 공무 파견, 해외 취업 등 단기 체류한 경우 출생 자녀를 ‘원정출산 예외자’로 인정한다”며 “이 경우 자녀는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 이탈을 완료하면 병역 의무를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행령 제12조 3항은 원정출산을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유학·해외 파견·취업 등 정상 단기 체류자 자녀는 예외로 규정돼 있다.

특히 2024년 국적업무처리지침 개정으로 원정출산 예외 대상 규정이 명확해지면서 증빙만 제출하면 국적 이탈 승인률이 높아졌다. 전 변호사는 “단기 체류자 자녀가 병역 의무를 면탈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제도의 맹점”이라며 “국회는 원정출산자와 예외자를 동일하게 취급하여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적 이탈이 불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외국에 주된 생활 근거를 두고 한국에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에게는 국적 이탈을 하지 않으면 권리 없는 병역 의무가 부과되는 등 위헌적 상황이 지금까지도 방치돼 있다.

현행법상 1983년 5월 25일 이후 해외에서 출생한 한인 남성은 아버지가 한국 국적자일 경우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부여받고, 1998년 6월 14일 이후 출생자는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을 보유하면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은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 이탈을 완료하지 않으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만 38세가 되는 해 1월 1일까지 병역 의무 대상이 된다.

이처럼 원정출산 예외자는 덮어두고, 병역과 무관한 이민자 가정 2세를 복수국적자로 만들어 거주국 공직·정계 진출을 제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 국회에서는 ‘국적 자동상실제’ 도입 초안이 검토 중이다. 국적 자동상실제는 만 18세까지 국적 이탈 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하는 제도로, 재외동포 2세의 공직·정계 진출 제한 문제를 해결하고 병역 부담의 평등성을 회복하는 목적이다. 다만 법무부와 병무청 등 일부 행정기관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 동포들의 반대를 이유로 현 제도를 유지하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 동포 간담회에서 복수국적 연령 하향, 우편투표를 비롯한 재외동포 참정권 보장, 민원 전수조사 등 권익 향상을 약속했지만,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국적 자동상실제 부활이 병역 공평성과 동포 권익 보호 모두에 핵심적이라고 강조한다.

전 변호사는 “국적법 15조에 새로운 조항을 신설해 이민 출산 2세와 원정출산 예외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국적 자동상실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세희·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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