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도 즈음에 태어난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소위 신식교육을 받다가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20대 나이가 되었을 1918년에 동경 YMCA에서 조선 독립선언, 그리고 다음해 1919년에 3.1 기미 만세사건의 주역들이 된다. 이 만세 독립운동 시위에 놀란 일본이 소위 억압통치에서 문화정책으로 바꾼다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일간지 발행을 허가한다. 그리고 이들 유학파들이 고국 땅에서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소설을 비롯한 문학은 물론 사상, 철학까지 새로운 세계를 고국에 전파하는 주역이 된다.
그리고 1937년 중일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 혼란의 해방정국, 6.25 전쟁 등의 문화의 암흑기가 거의 20여년 이어지다가 195 년 휴전이 되고 1955년 이후 다시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된다. 소설 같은 문학지는 물론 사상, 철학, 정치이념 들의 책들이 홍수처럼 발간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같은 원서를 번역할 사람들이 없었다. 다만 일본에 유학했던 사람들만이 이런 번역과 출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번역한 책들을 다시 한국어로 재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재번역물이란 게 대부분 일본의 명치유신부터 시작된 일본 개화기에 그들의 정서에 맞는 책들이었고, 유학파들이 배우고 읽고 정신적 공감을 했던 책들 역시 대부분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을 많이 접한 내 나이 또래는 정신적으로 저 밑바닥에 무의식적으로 일본의 철학과 이념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동의하게 된다. 당시에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일본인들의 영향이 깃든 니체, 헤겔, 칼 마르크스, 그리고 러시아의 문호들의 작품들을 재번역한 책들을 열심히 탐독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일본의 정신적 유산을 받은 나의 세대들은 많은 나쁜 잔재들을 이어갔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예를 들면 중학교 시절 한 학년 상급자라고 할지라도 길에서 만나면 군대식 경례를 했고, 군대에서 군번이 하나만 높아도 야구 몽둥이로 하급자를 때리는 것을 당연시 하며 받아 들였다. 회사에서는 상급자가 자리를 떠야만 일반 회사원들이 퇴근을 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새롭게 하는 이유는 한국판 신문에 실린 새 검찰총장 지명 발표 기사를 보고 느낀 게 있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검찰개혁이란 단어가 함께 실려 있고 새 검찰총장보다 사법고시 합격 기수가 위이거나 동기들은 소위 “조직과 서열을 위하여” 용퇴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검찰 개혁이란 말과 조직과 서열이란 말이 공존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조직과 서열을 최우선 하는 한 검찰개혁은 있을 수 없다.
촛불혁명을 진보 보수, 좌파 우파 이분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흐름을 저항하는 사람들을 나는 수구세력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새로운 개혁은 좌파 또는 진보의 몫이 아니다. 항상 잘못된 것을 개선해 나가는 진정한 보수의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일본 정신문화에 젖어있는 내 세대가 수구에서 벗어나 보수로 향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식민 정신문화에서 탈골쇄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한국을 위해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바로 검찰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조직과 서열이라는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넘어서는 개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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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 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