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에서 우러나는 로열티

2017-07-15 (토) 실비아 김 /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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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에 다니다보면 브랜드 로열티란 용어를 자주 접한다. 차를 구매해준 고객들과의 꾸준한 교감을 통해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함으로써 고객들 스스로 브랜드 전도사가 되고, 본인 혹은 지인이 또 다시 차량을 구매하도록 하는 근간이 바로 브랜드 로열티이다.

그 로열티란 용어가 최근 정치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지난달 연방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출석,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로열티를 요구했다고 증언하면서 부터다.


충효사상의 뿌리가 깊은 한국에서조차 로열티 즉 충(忠)의 의미가 재해석되는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대통령이 연방수사국장에게 충성을 요구하며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지를 종용했다고 하니 크게 이슈가 되는 게 당연하다. 대화 녹취록이 없으니 진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 코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로열티라는 것을 ‘당신이 내 말을 잘 들으면 나도 당신한테 문제가 생겼을 때 뒤를 봐 주겠다’ 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내가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봐 왔던 몇몇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금융회사에서 영업 업무를 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직속 상사가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천주교 신자라고 거절했지만 일을 잘해서 포상 개념으로 나를 초청하는 것이라 하여 결국 따라가게 되었다. 예배 후 상사는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줬는데 그중에는 회사의 CEO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CEO와 같이 이전 회사에서 옮겨 왔다는, 소위 CEO 라인으로 알려진 분들이 모두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이후 그 분들은 몇몇 큰손 고객들을 내게 소개해주었고 나는 ‘CEO 라인의 막내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혹 했었다.

하지만 몇 번 교회를 가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예배 방식이나 교리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교회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알아보니 그 교회는 소위 이단으로 불리는 교회였고, 덜컥 겁이 난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몇 주 동안 집요하게 나를 설득하던 상사가 포기하는가 싶을 즈음 직속 부장이 나를 호출했다. 부장실 에 가보니 그 교회 목사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에 다시 나오라고 한참을 설득하는 그들을 보며 모든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인지가 되고 공포감까지 생겼다.

최대한 빠르게 그 곳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예 다른 업계로 이직을 했다. 몇 년 후 다 같이 다른 회사로 옮긴 그들이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고 승승장구하던 나의 상사는 결국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마 그들 역시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며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을 로열티로 잘못 이해했던 듯하다.

그 사건 후 나는 왜곡된 로열티를 기반으로 한 관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그리고는 이후 근 20년 간의 사회생활 동안 업무에는 최선을 다하되 상사나 고객인 회사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하는 것은 지양해왔다.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 혹은 남자가 아니라서 실직에 대한 걱정이 덜한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사에게도 고객사에도 내 소신을 가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실직의 위기에 처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업무보다는 상사들의 개인사를 열심히 챙기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만 했던 사람들이 그 상사의 실직과 함께 회사를 떠나는 경우는 볼 수 있었다.

나의 첫 직장 상사들처럼 무조건적 로열티를 강요하는 누군가가 또 내 인생에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권력가라 한들 나는 그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강제적 충(忠)은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그리고 코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왜곡된 로열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임된 것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실비아 김 /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애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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