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안타까움

2017-07-14 (금) 12:00:00 정조은(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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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Bernal Heights 라는 동네의 언덕에 가끔 올라간다. 언덕에 이르기까지는 히스패닉 음식으로 유명한 미션 동네의 멕시칸 빵집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를 줄지은 오래된 집들, 그리고 언덕을 오를수록 비싸 보이는 집들을 지나면 드디어 그 언덕이 나온다. 경사를 열심히 올라가면 날씨가 좋은 날은 금문교부터 베이 브릿지까지 샌프란시스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언덕 위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올라오면서 가까이에서 보았던 낡은 집들이 줄지어 제각각의 색을 발하며 그 모든 색이 함께 멋있는 파스텔 색조의 경치를 만들어낸다. 색이 너무 멋있지 않냐며 공감하고 싶지만, 같이 언덕을 올라간 친구가 색맹인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일 때가 있다.

저녁이 되면 도심의 높은 빌딩 숲의 창문들을 밝히는 빛들과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로 경치는 가득해진다. 빌딩의 불빛 중 하나를 보며 내가 저 사무실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누군가는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있겠다고 생각한다. 고속도로를 빠르게 지나는 차들이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고 누군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고 있을 수 있다. 창문의 불빛 하나와 지나가는 차 하나에 들어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서 또는 차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다들 나만큼 선명하고 복잡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압도당한다. 그 많은 사람의 각기 다른 인생들이 내 눈앞에 멋있는 야경의 불빛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니.

언덕을 내려오며 지금까지 지나쳐온 많은 인연을 생각한다. 요즘처럼 넘쳐나는 연결고리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고도 어려울 때가 있을까? 암묵적으로 서로 이해하며 약속이라도 한 듯 직접 만나지도 통화나 문자도 하지 않지만, 새로운 인연은 물론 오래된 친구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서로의 안부를 수동적으로 확인한다.

지나치는 많은 인연들의 색색 다른 성격들과 인생사를 조금이나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색맹인 친구가 못 보는 파스텔 집들의 아름다운 색들만큼 안타깝다.

<정조은(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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