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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인듯 섬 아닌 섬 ‘안면도’

2017-06-23 (금) 태안=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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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지’에 가려진 숨은 보석 나만의 바다를 찾아서

섬인듯 섬 아닌 섬 ‘안면도’

태안 고남면 운여해변 낙조. 해안 제방에 방풍림으로 심은 소나무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물에 비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몰린다. 밀물 때면 수면이 더 넓어져 하늘까지 시원하게 담긴 모습을 볼 수 있다. <태안=최흥수 기자>

안면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태안 남면에서 300m 남짓한 다리(안면대교) 하나 건너면 바로 안면도다.

두 지역 사이 바다는 웬만한 강보다 좁아 섬에 들어섰다는 낌새를 차릴 수 없다. 안면도는 애초부터 섬이 아니었다. 현재 경관용 보행교량(대하랑꽃게랑 다리)을 놓은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은 하나로 연결된 땅이었다. 서해와 천수만 사이 물길을 이은 것은 조선 인조 때였고, 드르니항이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된 것도 그때부터다. 안면도는 바로 드르니항 맞은편 백사장항부터다.

비치 타월 한 장이면 나만의 해변


안면도 하면 ‘꽃지해변’을 먼저 떠올린다. 여행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해당화가 곱게 피어나는 곳이라는 예쁜 이름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꽃지가 이토록 유명해진 데에는 해변 북측의 두 바위섬 사이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조가 단단히 한몫했다.

꽃지 바로 위 방포항은 신라시대 해상전진기지였다. 이곳을 지키던 ‘승언’ 장군이 출정한 후, 부인 ‘미도’는 매일같이 바닷가에서 그를 기다리다 끝내 숨졌단다. 미도가 숨진 바위섬은 할미바위가, 그 옆의 섬은 자연스레 할아비바위가 됐다는 사랑이야기가 전한다. 둘 중 어느 것이 할미바위이고 할아비바위인지 특정하지 못한 만큼 설화는 아직 미완이다.

썰물 때면 두 섬까지 바닷길이 열려 산책할 수 있고, 바로 옆 개펄에서는 조개와 게 등을 잡을 수 있어 해변에서 쉬던 여행객들의 손길과 발길이 바빠진다. 볼거리, 즐길 거리,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꽃지해변의 장점이다.

하지만 꽃지를 포기하면 안면도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백사장항에서 꽃지해변에 이르기까지 태안반도 서쪽 바다에는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두에기, 방포 등 이름만큼 예쁜 해변이 쭉 연결돼 있다. 꽃지해변에 비하면 ‘전용 해변’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대부분 한산하다. 깔고 앉을 넓은 타월 하나만 준비하면 나만의 바다, 나만의 해변이다.

삼봉과 기지포, 안면해변은 입구만 구분돼 있을 뿐 하나나 마찬가지다. 3개 해변 길이를 합하면 4km에 이르러 꽃지보다 더 길고 넓다. 이들 해변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해안사구 복원구역이라는 점이다. 육지와 해변 사이는 딱딱한 콘크리트 제방 대신 완만한 모래언덕으로 연결돼 있다. 바닷바람에 밀려온 고운 모래가 쌓인 언덕에는 갯그령, 통보리사초, 순비기가 초원을 이루고, 갯메꽃, 갯완두, 해당화 등 분홍 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해안 안쪽의 송림도 빼놓을 수 없다. 해풍에 강한 해송은 키가 크지도 매끈하지도 않지만, 빼곡하고 그늘이 짙어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 더없이 좋다. 솔숲 사이로 ‘태안해변길’을 조성해 바닷바람 솔바람 맞으며 산책하는 코스로도 그만이다. 안면도의 작은 해변에 닿으려면 77번 국도보다는 백사장해변에서 꽃지해변까지 연결된 해안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꽃지해변 아래로도 샛별, 운여, 장삼포, 바람아래해변 등이 있지만 해안도로가 없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그 중에 운여해변은 제방 안쪽 호수처럼 고인 바닷물에 비치는 솔숲이 아름다워 사진동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삼척의 ‘솔섬’이 옛모습을 잃은 이후 더욱 귀한 장소가 됐다. 특히 낙조가 환상적인데 물때와 날씨까지 잘 맞춰야 하니 쉽지는 않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제방 끝자락에서 연결된 해변도 아담하지만, 밀려온 폐 어구를 비롯한 쓰레기가 방치돼 있어 많이 아쉽다.

특별관리 1000년 솔숲,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도는 해변 못지않게 송림이 빼어나다. 나지막한 산자락 어느 곳이나 소나무가 빼곡하다. 절정은 꽃지해변에서 가까운 안면도자연휴양림. 매끈하게 하늘로 뻗은 붉은 몸매의 적송이 입구부터 멋들어지다. 고개를 들면 우산처럼 넓게 펼친 가지가 넉넉하게 그늘을 드리운다. 바로 ‘안면송’이라 부르는 수령 100년 내외의 소나무 군락이다.

안면송은 역사가 길다. 재질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해운을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나라에서 관리해왔고, 조선시대에는 전국 73곳의 봉산(封山) 가운데 하나였다. 건축과 선박 제조 등 궁궐에서 사용하는 용도 외에 함부로 베는 것을 금지한 산림자원이라는 뜻이다. 1978년부터는 충청남도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근래에는 유전적 다양성까지 갖춘 것으로 밝혀져 산림청에서 우량형질 보급을 위한 육종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안면도자연휴양림은 7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휴양림 지구와 수목원 지구로 분리돼 있다. 휴양림에는 15~60분 코스의 4개 산책로를 조성했다. 목재 계단과 흙 길이 번갈아 나오는 산책로는 모시조개봉, 새조개봉, 바지락봉, 키조개봉 등 100m가 못 되는 낮은 봉우리를 연결한다. 휴양림이 위치한 곳이 조개산인 것에 착안해 봉우리마다 안면도에 많이 나는 조개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실제 조개산(朝開山)은 아침을 여는 봉우리라는 뜻, 정상에 서면 천수만의 일출과 서해의 일몰을 볼 수 있는 위치다. 산자락과 능선을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산책로 어디든 솔 향기가 진해 휴양림 전체가 힐링 공간이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도로 아래 지하통로로 연결된 수목원은 솔 내음보다 꽃 향기가 진하다. 2002년과 2009년 꽃지해변에서 열린 세계꽃박람회 부대행사장으로 꾸민 수목원은 철쭉원, 야생화원, 외국수원, 동백원 등을 갖춘 일종의 식물은행이자 정원이다. 입구에서 상록수원을 거쳐 전망대에 이르면 수목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중앙에는 도자기 문양으로 키 작은 나무를 가꾼 청자자수원과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호를 딴 한국정원 ‘아산원’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전체를 둘러보는 데에 1시간 정도 걸린다. 자연에 가까운 솔숲을 선호한다면 휴양림 지구, 아기자기하게 꾸민 정원이 끌린다면 수목원을 선택하면 된다. 주차요금 3,000원, 입장료 1,000원에 2곳 모두 돌아 볼 수 있다.
섬인듯 섬 아닌 섬 ‘안면도’

꽃지해변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섬인듯 섬 아닌 섬 ‘안면도’

드르니항과 백사장항 사이 ‘대하랑꽃게랑’다리



<태안=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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