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주 목걸이

2017-06-23 (금) 12:00:00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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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경계에 두고 햇빛과 대치중이다. 가끔씩 불던 바람도 창밖의 나뭇가지에 무더위를 걸어 두고 달아나 버렸다.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짓느라 바쁘게 드나들던 지빠귀 새들도 더위를 피해 쉬어 가는 시간인가 보다. 무료한 시간이 창 안과 밖에서 이렇게 멈춘 듯 흐르는 하오 2시.

나는 지금 지하실에 있는 작은 서재에 있다. 바깥세상의 분주함에서 잠시 스스로를 단절시켜 두고 머물 수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참 좋다. 묵은 책 냄새와 한차례 지나간 소나기가 전해준 흙냄새, 약간의 습기, 오래된 LP를 올려 지지직거리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모처럼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주말 오후 2시는 바쁜 일상에 지친 내가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쉼의 시간이기도 하다. 빛바랜 소파에 깊숙이 앉아 묵은 신문을 꺼내 펼쳐든다. 바쁘다고 큼직한 글씨만 간신히 훑어보고 쌓아 두었던 신문을 꼼꼼히 음독하며 지나간 세상을 다시 마주한다.

한국일보 미주 판 6월 10일자 신문 한 구석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중고품 거리 장터에서 13달러를 주고 산 다이아 몬드 반지가 진품으로 밝혀져 반지 소유자가 뜻밖의 횡재를했다는 소식이었다. 여태껏 모조 장신구로 알고 있었으며 우연한 기회에 소더비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26.3 캐럿의 진품 보석임이 밝혀졌다고 했다. 왠지 모조품을 40년 가까이 간직한 그 소박한 마음이 느껴져서 나와 상관없는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횡재에 덩달아 기분 좋았다. 그리고 문득 오래 전에 지인이 들려준 그의 아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진주 목걸이를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그 목걸이는 당대의 부잣집 맏며느리에게 어울리는 품격을 갖춘 예물로 그녀도 그분의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보석함의 제일 깊숙한 곳에 간직하며 아끼다가 정중한 만찬 모임이 있을 때나 자랑스럽게 걸고 나가는 목걸이였다. 몇 해 전 그녀 자신도 며느리를 보게 되었고 뜻 깊은 선물을 생각하다가 그 목걸이를 떠올렸다고 했다.

당시의 시가를 현재의 시가로 재 평가받고 싶은 마음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그녀의 마음은 그동안 망설이던 감정과 공증을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정말 뜻밖의 것이었다. 시조모, 시어머니, 그리고 자신까지 3대에 걸쳐 진짜 목걸이로 믿었던 것이 모조품으로 밝혀진 것이었다.

목걸이를 산 시조모가 당대에 유명한 명문가 안주인인데다가 그 목걸이를 산 곳 또한 그 시대의 유일한 명품관이었고 그동안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던 까닭에 지인과 지인의 아내가 받은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가짜를 달고 허세와 위세를 부렸던 그녀 자신이 광대처럼 느껴져 부끄럽기도 하고 가문의 소중한 유품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든 자신의 엉뚱한 공명심이 원망스러워 자책했다니 그녀가 느꼈을 상실감이 충분히 짐작되었다.

모조품임을 알게 되었으니 자신은 며느리에게 물려 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보물처럼 지녀온 목걸이는 차마 보여 주지도 못하고 3대를 내려 온 목걸이의 사연과 새로 산 목걸이를 내어 놓았다. 보석 감정사에게 몇 번의 확인을 하고 새로 산 진짜 진주 목걸이였다. 그러나 그녀의 며느리는 그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자신에게 물려 달라고 청했단다. 3대를 이어 왔다면 이미 그것은 진짜 목걸이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말했다니 진짜 소중한 것을 알아보는 현명한 아이를 며느리로 맞은 그가 부러웠다.

가짜도 진짜로 믿으면 귀하게 여기게 되고, 진짜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그 가치를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가치가 고작해야 눈에 보이는 명예 이거나 손에 잡히는 재화인 까닭에 진정한 행복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여 놓친 다음에야 후회하게 되는 것이리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최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오 2시에.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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