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의 뜻은 ‘책임’

2017-06-24 (토) 폴 손 /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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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호텔 로비에서 본 글인데, 요즘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글이 있다. “손주가 이렇게 귀여운 줄 알았더라면, 자식보다 손주부터 낳았을 것을…”이란 글이다.

자식들에겐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어 자식들을 마음껏 즐기기 보다는 이럴까 저럴까 하면서 노심초사 신경을 써왔었다. 특히 자식이 10대가 되고 무서운 신경전이 벌어지며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되뇌던 때가 어제 같은데, 그 자식에게서 다시 자식이 태어나 재롱을 부리니 손주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하며 손주 볼 때마다 할아버지는 파안대소다.


지난 아버지날 교회에서 특별좌담시간을 가졌다. 초청된 세분 모두 산산조각 난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자라서, 오늘에 이르렀다. 조산아로 태어난 즉시 입양되어 친 혈육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양부모 밑에서 자란 목사님, 아내와 다섯 자녀를 팽개치고 집 나간 아버지를 둔 목사님, 집안의 여러 사정으로 위탁가정에서 자란 작가 등 세분이 각자 가슴에 지닌 아버지상 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등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었다.

입양아 출신 목사님은 첫 아들의 출생으로 세상에서의 첫 핏줄을 얻으며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짐했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목사님은 “당신이 없어도 잘 할 수 있다”며 반항적으로 자랐으며, 고교시절 프롬에서 여학생이 임신해 태어난 작가는 출생 때부터 병원에 팽개쳐진 후, 그 누구도 믿지 않으며 자랐다. 이 세 분이 성장하며 만났던 새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였다.

아버지로 인해 내면세계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면, 남자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인생의 훌륭한 코치를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항상 아버지를, 남을 원망하며 살게 된다. 자신만의 불신의 세계를 형성하며 살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책임“이라는 뜻이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슴에 지니고 살아야할 것이 있는 반면, 털어놓고 앞으로 나아 가야할 것도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입양이나 모친의 재혼으로 계부와 성씨가 다르면, 학교나 동네에서 수근거림을 듣기도 한다.

미국의 레슬리 킹은 입양되어 양부의 성씨를 따라 제럴드 포드가 되었고, 미국의 38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고아 해외입양은 세계 1위이고, 국내 입양은 세계 꼴찌이다. 사회의 의식구조가 상당히 배타적인 탓인데 이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천년 간 화해하지 못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아버지날, 아들은 출장가고 없고, 며느리는 손주들과 친정에 갔으며, 딸은 타 지역 대학원에 다닌다고 주말 출타 중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책임을 다한 장한 아버지라고 더운 날 냉면 한 그릇 사 주겠다는 아내가 있으니 고맙기만 했다.

아버지라는 말이 책임을 뜻한다면, 할아버지는 책임을 벗어난 탈(脫) 아버지라는 뜻이 아닐까. 그 말이 할아버지로 정착된 것은 아닐까?

<폴 손 /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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