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의글] 아버지와 자전거

2017-06-17 (토) 09:00:42 방무심/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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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억은 아주 단순해서 이른 아침에 반 시간은 족히 걸리는 가게에 걸어가셨다가 거의 자정이 돼서야 오셨다. 늘 반복된 생활을 하시는 시간이기에 아버지와 같이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약주는 친구분과 가끔 하셨지만, 담배는 거의 하루 한 갑 이상을 피우셨다.

담배도 필터가 없는 독한 ‘백양’ 담배만 즐겨 피우시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 생활이신 듯 느껴졌다. 그때 당시에는 국민 소득이 백 불이 안 되던 시절이니 아버지의 생활은 어려운 가운데 가족 부양에 온 힘을 기울일 때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삼천리’ 자전거를 사 오셨다. 그 시절은 자동차가 있는 집은 거의 없었고 새 자전거가 있는 집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잠도 오지 않고 자전거 생각에 거의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기 전인 다섯시쯤에 일어나 가슴이 쿵덕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자전거를 끌고 집 밖에 있는 청계천 '아스팔트' 길로 나왔다. 열 살인 내가 자전거를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이 들었으나 한번 타고픈 생각에 안장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다리 한쪽을 중간에 끼워서 어설프게 끌고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형아가 오더니 “야! 새 자전거 근사하다. 형아 한번 타게 해줄래?” “ 저기 한 바퀴만 돌다 올 테니까” 순진한 나는 순순히 운전대를 넘겨 주었다. 잠시 후, 올 시간이 넘었는데 나타나지 않고 마음은 불안해진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그 나쁜 형아는 자전거와 함께 뺑소니쳐 버렸다.

태어나서 팔, 다리에 힘이 '쭈욱' 빠져 보기는 그날이 처음이다. 아빠한테 '꿀밤' 한 대 맞고 자란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분명 혼이 날 테니 하늘이 노래진다.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 마음을 추스르고 대문을 들어섰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 "자전거는?" 하시고 묻는데 나는 얼굴만 찡그리고 서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하실까 걱정이 태산인데 잠시 후 그 사실을 아시고 "어머니! 무심이 밥 주지 마세요!" 딱 한 마디 하시고 걸어서 출근하셨다. 그때 나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고 과연 우리 아빠 최고였다.

아빠는 주위에서 흔히 법이 없어도 살만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 왔지만, 참! 바보 아빠다.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아 주셨으면 이토록 사무치게 그립지는 않았을 텐데….

아버지의 날을 맞아 말해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방무심/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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