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수저 목사’ ‘흙수저 목사’

2017-06-15 (목) 한종은/목사
작게 크게
수저 계급론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녀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운명론적 발상에 근거한다. 돈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금수저를,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흙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말한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되고, 그렇게 형성된 불평등이 대물림 되고 있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 물려받은 게 없는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어렵다는 절망이 그 속에 담겨있다.

이 불평등한 사회의 현실이 교회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세습이다. 세습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목사 아들이 목사 아버지가 쌓아놓은 부와 명성을 물려받는 대물림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세습으로 교회를 물려받은 목사는 그 출발이 다르다. 남들은 평생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성취가 하루아침에 자기의 것이 된다.


한국 대형교회의 세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한국 개신교의 위상과 신뢰를 추락시키는 주범중 하나였다. 더욱 교묘하고, 변칙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개신교계의 세습을 바라보는 흙수저 목사들은 허탈할 뿐이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계급주의 사회의 모순 속에서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야 할 교회가 앞장서 세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사유 집단이며 기업에 불과하다.

교회는 세상이 타락해 간다며 탄식한다. 그러나 정작 가슴을 치며 탄식할 일은 교회의 타락이다. 교회의 타락이 무엇인가? 사람이 교회의 주인노릇 하고, 왕 노릇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것도 아니고, 목사의 것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교회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목사 자신의 것임을 주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습은 인간이 교회의 주인 된 결정적 증거이다.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세습하는 교회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충분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과 ‘아들이 아니면 교회에 잡음이 생기고,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처럼 교만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비범하고, 능력 있는 특정인을 통해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 하기를 기뻐하는 분이다.

교회세습은 아무리 적법한 청빙 절차를 거친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세습 자체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정신과 배치되는 인간의 욕심과 야망에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무익한 종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종은 어떤 대가를 바랄 수 없다.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충성할 뿐이다. 만약 종이 ‘지금까지 이만큼 고생했으니 이제 내 몫을 내 놓으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종에게는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권리와 지분을 주장하는 종은 주인의 자리를 탐내는 반역자가 된다.

무익한 종의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이 사회를 향해 정의를 선포하고 꿈과 희망을 말할 수 있다.

<한종은/목사 >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