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남편의 옷

2017-06-13 (화) 12:51:22 정고운(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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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처음 데이트를 할 때 그의 옷장에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 5장, 검은색 긴팔 티셔츠 2장, 청바지 두 개가 전부였다. 물어보니, 일단 다같이 넣고 빨기 쉽기 때문에 그 색깔을 골랐고, 쇼핑을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 남편은 줄무늬 티셔츠도 생기고, 얼굴에 잘 어울리는 색의 그래픽 티셔츠도 있으며, 입지도 않던 스타일의 청바지도 잘 입게 되었다. 한동안 고분고분 내 말대로 옷을 잘 입어주는 남편 덕분에 남자 옷 쇼핑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 둘이 생기는 동안 많은 게 변했다. 둘 다 몸무게가 달라졌고, 우리를 위한 쇼핑도 끊겼다. 임신 중 쪘던 살이 빠져야 다시 옷을 살 수 있는 처지인 나. 부인이 자기 옷 쇼핑할 시간도 없으니 자동적으로 옷 쇼핑이 멈춰진 남편. 둘 다 살집이 불어나 맞는 옷이 별로 없음에도 입던 옷을 어떻게든 계속 입으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다달이 사이즈가 달라지는 막 태어난 둘째와 옷 입기에 재미 들이기 시작한 첫째 딸을 위해 쇼핑할 시간은 많다. 꺄르르 웃으며 뛰어다니기 편한 디자인의 시원하고 예쁜 여름 드레스를 사주고 싶다. 발도 조금 커진 것 같으니 여름 샌들 하나와 운동화를 새로 사주어야 한다.


그러다 드디어 아이의 세례식을 위해 남편과 내가 옷 같은 옷을 입어야 할 날이 왔다. 셔츠 하나를 구입하러 갔다. 남편을 위해서였다. 정가99불. 세일해서 39.99. 판매 직원이 좋은 딜에 사는 거란다. 실소가 터졌다. 원래 39.99에 맞춰 제작한 옷이 분명하다. 봉재 상태도 그냥 그렇고, 더 쇼핑하면 이보다 예쁜 옷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 입어보고 대충 맞는 것 같으니 그냥 구입하기로 했다. 바지는 허리가 잘 잠기지 않지만, 있던 바지에 셔츠를 내어 입기로 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 아이들을 위한 인터넷 쇼핑에 나섰다. 그런데, 온 인터넷이 난리다. 바로 파더스 데이. 코앞이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착하고 소중한 우리 남편. 아차 싶었다. 오늘 밤은 그의 옷 쇼핑에 집중해야 한다. 삼 개월간 남편이 노래를 불렀지만 계속 잊어버리고 못 사던 새 잠옷도 오늘 사야겠다. 집 앞에 택배가 올 때마다 자기 것이 있냐며 농담하던 남편. 진짜 그를 위한 사랑의 택배가 오게 해야겠다.

<정고운(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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