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구는 뜨거워지는 데…

2017-06-03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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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이 해롭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인식이 없었다. 1990년대 들어서며 간접흡연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고, 흡연을 제한하는 규정들이 생겼다. 우선 식당이나 비행기 안에서 흡연석과 금연석을 구분하게 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흡연자들은 식당 구석자리 혹은 비행기 뒷자리에 배치된 흡연석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흡연석’은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규제를 위한 규제였다. 사람은 흡연석과 금연석을 구분할 눈이 있지만 연기는 눈이 없다. 연기가 금연석 경계를 넘어 마구 퍼지면서 결국은 실내 전체가 간접흡연의 장이 되었다. 기체는 가두어둘 수 없는 것, 금연석 흡연석 구분은 코미디라는 사실에 당시 모두가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30년, 대기오염이 심해지고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확실해진 지금 지구는 거대한 식당이거나 비행기 안이다. 온실가스를 어느 외딴 상공 안에 가둬둘 수가 없다. 어디든 떠다닌다. 기후변화로 사막화가 심해지면서 생긴 황사는 중국대륙을 건너고 서해를 건너 한반도를 뒤덮는다.


온실가스는 결국 대기권 전체로 퍼져나가 온 지구를 병들게 할 것이니 이것은 인류 공동의 문제, 모든 국가들이 함께 대처해야 할 사안이라는 인식으로 채택된 것이 기후변화협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 가장 최근 협약인 파리협정에서 미국이 탈퇴한다고 발표해 세계가 시끄럽다. 2차대전 이후 70여년, 지구촌의 맏형 역할을 해온 미국이 갑자기 집안 중대사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니 모두들 당황한다.

이유는 철저한 자국이익 우선주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각국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마크롱은 ‘우리의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하겠다고 맞받아쳤다. 미국이 비운 맏형자리를 유럽연합과 중국이 메우며 기후변화 대응에 주도적 역할을 할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밀려났다.

트럼프의 탈퇴 결정은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기후변화는 날조!”라며 석유산업, 석탄산업을 지키기 위해 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국내 환경보호 규제들도 풀겠다고 그는 공언해왔다. ‘돈 안 되는 건 안 하겠다’는 말이다.

트럼프의 결정은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을 돌아보게 한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과거 에어컨이 필요 없던 남가주에서 이제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날 수가 없고, 이상고온 기록은 해마다 갱신되며, 지역에 따라 가뭄과 홍수, 산불, 태풍은 점점 심하게 점점 자주 일어나고 있다. 만년설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해안가 마을들은 침수되고, 빙하가 기록적 속도로 사라지는 북극에서는 북극곰들이 조막만한 얼음덩이에 의탁한 채 먹지 못해 야윈 모습이다.

이 모두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면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과다 배출된 결과라고 대기과학자들은 설명한다. 18세기 중엽 산업화 이후 지구평균온도는 섭씨 1도가 상승했다. 불과 1도의 차이가 이런 엄청난 변화들을 일으켰다.

파리협정은 21세기 말까지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가능하면 1.5도로 잡아둘 수 있도록 각국이 자율적으로 배출량 감축계획을 세우고 이행하자는 합의이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이 화석연료 대신 대체에너지를 개발해 쓸 수 있도록 선진국들이 지원기금을 만들자는 내용이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3조 달러를 약속했다. 트럼프는 이 돈을 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환경과 경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이다. 환경을 중시한다면 지구는 인류가 공생하는 공동의 커뮤니티. 함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단 하나뿐인 우리의 행성이다.

경제적 이익이 우선이라면 지구는 각국이 더 많이 갖기 위해 싸우는 각축장. 기업가, 트럼프는 후자를 택했다. 협동과 연대보다는 ‘미국 우선주의’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는 버려진다. 자국 이익에만 갇혀서는 미국이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재편될 수도 있다.

불과 몇 십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대표적인 것이 병물이다. 사람들이 물을 사서 마시리라고는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다. 우물물이든 수돗물이든 맑고 깨끗했다. 지금 세대는 병물 아니면 마시지 못한다.

지구가 계속 뜨거워진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까. 공기를 사서 마시는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부자들은 히말라야 청정 공기를 사다 마시고, 가난한 사람들은 천연 매연을 마시는 기막힌 상황이다. 오로지 물질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결정을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불안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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