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잊혀진 사람들

2017-06-03 (토) 강창욱/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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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에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뉴스를 통해 처절한 피난민들의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전쟁에서 싸운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는 훨씬 드문 것 같다.

최근 내가 읽은 신문에는 여러 나라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방문하는 한나 김씨의 기사가 신문 한 페이지를 덮었고 군인들이 알링턴 국립묘지 전몰용사 묘비에 국기를 꽂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지난 29일은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미국의 전몰장병 추모일이었다.

이 날을 여름휴가 성수기 시작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평화스런 삶을 보호해준 군인들의 은혜에 대한 얘기는 드물게 보인다. 우리가 불편해하거나 가슴 아픈 기억은 피하고 싶지만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이러한 날들을 정해서 기억하는 것이 인간문화의 좋은 일면이겠다.


이런 사실에 대해 빈정거리는 반전(反戰) 인사들도 있다. 6.25라는 전쟁을 너무도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러나 나에게는 생생한 기억이다. 미국의 이민사회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얘기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1950년 겨울의 그 치열했던 함경남도 장진호 수력발전소를 에워싼 산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에 의해서 수많은 병력을 잃은 연합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장진호 전투에 대한 얘기가 근간에 더 들리고 있다.

반세기전 내가 처음 미국에 발을 들였을 때 미국인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거나 아니면 한국은 참으로 추운 나라였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전쟁의 가장 뚜렷한 기억이 장진호 전투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치열했던 전쟁의 상처를 직접 보았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전쟁경험이 많았던 미 육군 제 7사단을 그 전투에 투입하기로 하고 연대 급의 제 31특별대대를 일본 후지에서 창설하여 장진호 전투에 투입했다. 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나의 형이 그 부대 C중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형과 가장 절친한 친구와 함께 지원하였고 한 소대에 배치되었다.

그 장진호 전투는 무척 치열하였고 미군의 패전은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패잔병과 피난민의 후퇴는 해상운송으로 했다. 그것이 흥남철수이다. 군인들이 실린 배는 부산, 민간피난민들이 실린 배는 거제도로 갔다. 바로 1951년의 1.4 후퇴였다.

그때 형은 전투복, 배낭, M1 장총과 철모 등을 갖고 터벅터벅 군화를 신은 채 실신한 사람처럼 집에 들어 왔다. 큰방으로 올라왔다가는 말없이 사랑방으로 사라졌다. 그의 전우이며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한집에 사는 형의 얼굴을 별로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시고 아버지도 말씀이 없으셨다. 형은 약 반년가량 완전히 두문불출하였고 식사나 내의 등 필요한 것들은 문을 조금 열고 들여다 주는 길 밖에 없었다.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셨다.

형은 재편성된 자기 중대의 미군으로부터 돌아오라는 소식을 받고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다시 부대로 돌아가 1년쯤 후에 다른 병과로 전역했다. 일 년 후에 집에 돌아온 형은 전과 너무도 다르게 부드럽고 친절한 인성으로 변했고 그 후 여생을 한국사회에 충실히 공헌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오다가 미국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며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형이 겪은 것이 소위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병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노숙자들 중에 이런 환자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지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치료나 예방 같은 것은 정부의 퇴역군인을 위한 큰 예산과 큰 기관으로도 해결이 부족하다. 없는 것 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심리적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계적으로, 교과서적으로 치료를 하겠지만 상처를 입은 제대 군인이 거리에서 지내며 사회에서 먼 현실에서 살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아직도 월남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이기지 못하는 용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이 망각이라는 편리한 도구에 숨어 있을 것이다. 무지의 소치이기도 할 것이다.

<강창욱/정신과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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