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빨강의 추억
2017-05-27 (토) 12:00:00
장은주(화가)
바람이 많이 분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가운데 오월도 어느덧 다 지나가고 있다. 마치 이 바람에 밀리어 가듯...
십여 년 어느 날 남편은 꽃 한다발을 나에게 주었다. 빨간 색과 노란 색의 꽃들이었다. 나는 빨간 색 꽃을 좋아하지 않으며 노란 색과 함께 있는 건 더욱 싫었다. 나는 그 꽃들이 싫었지만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어머니께 갖다 드리면 되겠다는 해결책을 생각해내었다. 어머니는 꽃들은 무슨 색이든지 아름답다 하시면서 고맙게 받아 주셨다. 어머니는 3년 전 돌아가셨는데 빨간 색을 무척 좋아하셨다. 하얀 장미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오월의 오후에 나는 빨간 색의 의미를 생각한다.
하얀 장미꽃들이 딱딱해 보이는 녹색의 봉오리를 뚫고 나오기 시작할 때 나는 장미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왜냐하면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할 때 붉은 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얀 장미이기에 새로 피어날 때 봉오리에 맴도는 붉은 색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또 장미들은 힘든 환경에 있을 때 보라 색이거나 파란 색에 가까운 꽃들이었지만 붉은 색에 더 가까운 꽃을 피우기도 한다. 꽃을 키우다 보니 나는 꽃들의 색을 보고 그들의 상태를 짐작하게 되었다. 살아내려고 애쓰는, 생명을 구하는 절박감을 소리 내지 못하고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였다.
무채색을 제외하고 인간이 최초로 의식한 색은 빨간 색이라고 한다. 빨간 색은 행복한 상태와 열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적의, 아픔 등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다. 빨강이 드러날 때는 아픔을 호소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힘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나는 꽃과 사람들을 통해서 경험했다. 그런 빨강이 주는 치유를 생각할 때 색은 참으로 살아있으며 우리와 모든 사물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색을 잘 이용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때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싶다든가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외출하고 싶을 때 우리는 빨강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누군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아픈 분을 방문할 때 빨간 색의 선택은 도움이 되리라.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날 남편이 그 꽃들을 선택했던 마음은 나에 대한 빨강의 열정과 노랑의 기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때에 색에 턱없이 민감하여 속좁게 행동했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남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
장은주(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