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릅나무

2017-05-27 (토) 12:00:00 최원국/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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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소리가 어느덧 창문 틈으로 내 얼굴을 스친다. 깊숙한 몸속에서 동면하고 있던 세포가 꿈틀 거리며 기지개를 편다. 창밖을 보니 나뭇가지에 파릇파릇한 새 잎들이 햇병아리를 보는 것 같이 앙증맞다. 한 겨울 동안 참고 기다렸던 판의 달래, 씀바귀, 쑥, 냉이 등이 얼굴을 내밀고 있을 생각을 하니 어린 시절에 입맛이 떨어져 밥상에 자주 올라 왔던 봄나물들이 생각난다. 이 나물들이 세월을 망각한 채 긴 겨울을 웅크리며 생활했던 나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언젠가 친구가 산에서 두릅나물을 뜯어 왔다고 깨끗하게 다듬어 가지고 왔다. 세월은 갔지만 두릅나물을 먹어보니 그 향기와 맛은 옛날 맛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었던 나물이라 먹으면서 감회에 젖은 적이 있었다. 옛 어른들은 '봄에 피는 새싹은 약초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두릅나물을 봄나물의 으뜸으로 쳤으며 어린 순을 삶아 초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에 향기가 가득 번진다.

두릅나무는 영양학적으로 다른 채소류의 나물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많이 들어 있다. 특히 쓴맛을 나게 하는 사포닌은 혈액 순환을 도와 피로 회복에 좋고 다이어트에 좋다. 가을에 수확하는 열매와 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했고 민가에서는 당뇨병에 좋다고 껍질과 뿌리를 달여 먹는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건강에 좋은 나무로 알려지면서 산에서 채취하는 자연 두릅은 소비자에게 공급이 부족하여 한국 농가에서는 상업용으로 전문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친구와 같이 뉴욕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행을 했다. 산 중턱 중간 중간 응달진 곳에 잔설은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쉬운지 마지막 몸부림으로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깊은 산속의 나무들은 그 때서야 새 순이 봉긋 솟아오르면서 꽃망울을 맺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산 중턱쯤 양지바르고 전망이 좋은 넓은 바위에서 쉬었다.
그런데 근처에 키가 크지 않은 두릅나무 군락에 파릇한 새싹들이 보였다.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그 군락에 가까이 가보니 새 순은 너무 어렸다. 좀 채취하기에는 이른듯한데 벌써 급한 사람들이 따간 흔적이 있었다. 정상까지 가는 도중에는 아직 손이 안 간 나무를 발견하기도 했다.

두릅나무 순을 딴다는것은 억센 가시에 찔리지 않고는 쉽게 따는 나물이 아니었다. 높은 나무는 가지를 휘어잡고 따야하는 힘든 작업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지키고 종족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억센 가시를 두르고 살지만 인간은 잔인하게도 그들을 못살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굴하지 않고 옆 가지에서 또 뿌리에서 자생하면서 종족을 보존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상의 이치를 아는 듯 두릅나무는 새 순이 자라는 시기가 매우 짧다. 그 시기를 놓치면 나물로 먹을 수가 없다. 두릅나무가 살기 위한 자기만의 생존 법칙이 아닐까. 그러면서 봄이면 그들은 인간을 위하여 또 새싹을 키우고 있다. 온 몸에 가시를 두르고 대나무같이 곧게 서있는 모습은 탐욕스러운 우리 인간을 비웃는 듯 했다. 그들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태어난 것일까?

<최원국/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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