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옥자’가 간다

2017-05-24 (수) 하은선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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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0회를 맞은 칸 영화제가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옥자’로 인해 시끄럽다. 디지털 플랫폼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해 만든 ‘옥자’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프랑스 영화위원회와 극장협회로부터 반발을 샀다.

프랑스의 모든 영화는 극장 개봉 이후 3년이 지난 뒤 넷플릭스와 같은 가입자 주문형 비디오(SVOD)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옥자’는 프랑스 개봉을 확정짓지 않은 상태였던 것. 결국 프랑스 정부는 넷플릭스 제작영화들을 두고 고심하다가 올해는 초청을 고수하되 내년부터는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하는 작품을 전제로 영화제 경쟁부문을 선정하겠다는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 유료 영화·TV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가 재편한 ‘게임의 룰’이다. 봉준호 감독은 모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유니버설과 폭스는 올드 스튜디오이고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디지털 스튜디오라고 농담 삼아 말한다. 넷플릭스와 계약하면 극장 개봉 범위가 제한돼 아쉽긴 하지만 특정기간 극장 개봉을 했다가 오랫동안 블루레이와 VOD로 남고 영화제나 회고전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일생을 한 주기로 길게 보면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감독 입장에서는 개봉 흥행 압박이 없고 클릭 수도 대외에 공개되지 않아 작품 완성도에 매달리면 된다는 것. 봉 감독은 “창작의 자유도 크다. ‘옥자’의 제작비가 5,700만달러인데 이 규모면 할리웃에서 대부분 최종 편집권을 감독이 갖지 못한다. 아무리 스타 감독이라도 예산이 3,500만달러 이하일 경우만 최종편집권을 줬다. 그런데 ‘옥자’는 명확히 감독의 파이널컷을 보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독의 편집에 제작자가 투자를 무기 삼아 마음대로 가위질하는 ‘갑질’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감독의 세상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디지털 플랫폼에는 대외 공개되지 않는 빅 데이터라는 게 존재한다. 클릭수는 물론이고 관람 시간까지 영화별로 집계된다. 가입자들에 의해 영화의 흥행 판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전통 가치가 위협받는 세상이다. 올해 박스오피스 최고를 기록한 영화 ‘뷰티 앤 비스트’의 전 세계 극장 수입은 12억2,183만달러로 집계됐다. 3D영화이기에 비싼 관람료를 15달러로 어림 잡으면 8,000만명을 극장에 불러모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 9,800만 명에 훨씬 못미치는 숫자다. 가입자수 1억명을 향해 달려가는 넷플릭스를 두고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거야’라고 아무리 공격해봤자 소용없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가입자들을 우선하는 ‘가족 챙기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오는 6월28일 강원도 산골소녀 미자의 십년지기 친구인 수퍼돼지 ‘옥자’는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들의 품으로 달려간다. 칸 영화제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9,800만 인구는 옥자를 알게 되리라.

<하은선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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