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치지 않은 편지’

2017-05-23 (화) 08:32:21 최연홍 시인 (페어팩스 스테이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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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 시인의 한·영 대역 시집 서평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집이 한 영 대역으로 서울에서 출판되었다. 번역가는 안토니 수사와 황수잔씨가 맡았다. 번역가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시를 번역하는 일을 그만큼 조심스러웠고 어려웠다고 역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 정시인이 누리는 인기는 내가 몸소 체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가 2015년 3월 워싱턴의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와서 시낭송에 곁들인 강연을 했을 때 모인 청중이 그 사실을 증명했고 강연이 끝난 후 그와 악수하기를 기다리는 분들, 그와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분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 여자는 반 진담, 반 농담으로 “외로워서 죽겠어요!” 호소하고 있었다. 그가 발표한 “수선화”의 한 대목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한영 시집에 모두 108편의 시가 들어있다. 영어로 번역된 시편이 108편. 모두 216편의 시를 읽게 된다. 모두 많은 한국인들이 애송하는 시편들이다. 나는 이 서평을 대신해 3편의 번역시를 비교하려 한다. 정호승 시인이 워싱턴에 왔었을 때 내게 번역을 부탁한 다섯 편의 시를 함께 비교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로 3편으로 한정하려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별의 노래” “산산조각”이 그가 가장 아끼는 시편들이고 그가 미국에 와서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편들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의 시를 열 사람이 번역할수 있다. 더 많은 번역본이 나오면 번역의 품질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은 더 많은 좋은 번역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아래 3편의 정호승 시 제목이 이 시집에 나온 것과 나의 번역이 다른만큼의 번역의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나의 번역과 이 시집의 번역을 눈여겨 보길 바란다. 나는 두 번역자들로부터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된다.
정호승 시인의 신간 한영 대역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두 번역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


올 10월엔 스웨덴 학술원이 한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정호승 시인을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한다는 소식을 세상으로 내 보내길 간절히 바란다.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이별 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최연홍 시인 (페어팩스 스테이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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