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지개 빛 시간 속에서’

2017-05-25 (목) 12:00:00 Ruth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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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통에서 빨래를 비비셨다.

사과나무 아래, 벽돌로 만든 오래된 길에 앉아

엄마와 이모들이 빨래를 문지르던 달콤한 소리.


벌들이 머리 위를 날고, 굴뚝새는 지줄거리던.

네 명의 젊은 여인들은 하나씩

무지개빛의 빨래판을 끼고

주먹을 숯돌처럼 문지르고,

손목이 빨갛게 되도록 비틀곤했다,

따 내린 머리를 뒤로 제치며,

에이프런에 물기를 닦았었다.


Jersey 산 송아지는 담장 뒤에서 움메 움메 울고;

부드러운 하루는 종일,

커다란 갈색 눈과 황소 머리를 가진,

이 반려동물들에게 밀려와 한가로이 윙윙거렸다.

네 번을 헹군다고 그들은 말했었다.

그리고 어떤 것은 풀을 먹였고

바구니에서 꺼내 둘 씩 잡고 흔들었다.

빨래집게에 꽂혀 즐겁게 펄럭이던

삶의 속살, 라일락 숲과 주목나무 사이의;

갈색 체크무니, 핑크, 그리고

엘리스 블루 스커트들.

Ruth Stone(1915-2011) ‘무지개 빛 시간 속에서’

임혜신 옮김

시인, Ruth Stone의 남편은 대학교수였는데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자살을 했다. 혼자 아이 셋을 키우고, 글을 쓰고 가르치며 근 백 살을 살고 간 그녀는 2009년 퓰리처상 최종후보였다. 이 시는 그녀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어머니, 건강한 여인들의 추억이다. 그 추억은 풍요다.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대자연과 더불어 사는 가난한 풍요에의 기억이다. 빨랫줄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부끼던 깨끗한 옷가지들을 기억하는 세대는 이제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계를 다루며 편리하게 살고 있는가. 우리의 영혼은 피로하다. 하지만 기억은 무지개 빛깔의 시간 속에서 빛나고 있다.

임혜신<시인>

<Ruth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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