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광릉, 우드스탁

2017-05-23 (화) 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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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키치키, 빗방울이 16비트 리듬으로

살아나는 광릉수목원에 가본 적 있나요

수십 만의 히피나무들이 부동자세로


입석 매진된 한밤의 우드스탁 말이예요.

레게머리 촘촘한 수다쟁이 가문비나무와

짚내복을 사철 입고 사는 늙은 측백나무 사이

우르르쾅, 천둥 싸이키가 번쩍거리고

다국적 수목원 안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

고막을 찢으며 축제는 시작되지요

굵어진 빗방울이 시름시름 앓고 있던


뽕나무 그루터기를 흠씬 두들기고 가는 밤

비자도 없이 말레이시아에서 입국한

고무나무도 언제 새끼를 쳤는지

말랑말랑한 혀를 내밀고 빗방울을 받아먹고 있네요

때론 아무 것도 흔들지 못한 빗방울들도 있어요

맨땅에 헤딩을 하고 어디에도 스미지 못하고

웅덩이에 모여 울고 있는 음악들을 나무들은

뿌리를 뻗어 싹싹 혀도 핥아주기도 해요

지상의 모든 음악들이 생생불식 꿈틀거리는

수십 만의 히피나무들이 밤새 기립박수를 치는

광릉수목원 즐거운 우드스탁으로 놀러 오실래요

지난 가을부터 자작나무 가지 위에 걸터앉아

나, 당신만을 기다리는 올 나간 테디베어예요.

김 산(1976- ) ‘광릉, 우드스탁’ 전문

수목원에 천둥 번개가 치는 폭우의 밤이다. 캄캄한 빗속에 나무들은 제각기 흥에 겨워 몸을 비틀며 음악을 연주한다. 고독과 광란의 밤이다. 한 밤의 축제란 그런 것이다. 미친 듯이 때리는 빗소리와 번개 속에 생생불식 꿈틀거리는 나무들은 생이라는 광란의 춤을 추는 이 세상의 시끄런 모습 같다. 그 축제 속에 올 나간 테디베어 하나,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소란할수록 깊어지는 고독, 저 높은 나무 위에서 오래 오래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는 시인이라는 참 가난하고 철학적인 관객이 아닐까 싶다. 임혜신<시인>

<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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