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아스캔들, 그 종착역은…

2017-05-22 (월) 옥세철 논설위원
작게 크게
‘백악관 발(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난해 말 다가오는 새해, 그러니까 2017년을 내다보면서 미국 언론들이 던진 화두다.

조크로 알았다. 맨해튼의 부동산업자 트럼프의 대통령출마 그 자체를.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됐다. 그 트럼프 정부 출범을 주류의 미 언론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다. 다우존스지수는 전일대비 372.82포인트가 떨어졌고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43.64포인트나 빠졌다. 나스닥지수도 158.63포인트가 하락했다. 반면 안전재산인 금값은 급등했다. 지난 17일의 뉴욕증권시장의 상황이다.


무엇이 금융시장을 얼어붙게 했나. 정치적 불안정성이다. 이날 연방법무부가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의혹에 대해 특검수사를 결정했다고 발표하자 증시는 패닉 상황에 빠져든 것이다.

‘백악관 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불안, 불안했었다. 선거캠페인기간 내내 트럼프 진영의 러시아내통설이 나돌면서. 그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특검 수사가 마침내 결정되면서 워싱턴 정가에 새삼 확산되고 있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파면론’이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 수사국(FBI)국장에게 ‘러시아내통 의혹’관련 수사를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코미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것만으로도 탄핵감이라는 것이 상당수 관측통들의 주장이다. 거기다가 특검 수사결과 러시아와의 내통사실이 드러나면 탄핵은 불가피하다는 거다.

탄핵에는 그렇지만 여러 가지 장애가 따른다. 대통령 탄핵 소추는 하원의 과반수 표결로 이루어진다. 탄핵심판은 상원의 2/3 이상 표결로 이루어진다. 현재 연방의회는 공화당이 다수다. 그러니 하원 과반수 표결도 어렵다. 내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해도 상원에서 2/3 표결을 끌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탄핵에 의한 파면은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에서 거론되는 또 다른 방안은 연방 수정헌법 25조 4항 발동이다. 이 수정헌법 25조 4항은 내각의 다수가 대통령이 권한과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상태로 판단하면 파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대통령직은 부통령에게 돌아간다.

반(反)트럼프 진영의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러시아게이트 수사에서 새로운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때 공화당 내에서도 반 트럼프정서가 확산돼 이 수정헌법 25조 4항 발동을 통한 ‘합헌적 쿠데타’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인가. 공화당 일각에서 벌써부터 나돌고 있는 것이 ‘펜스대통령 기대론’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특검 수사를 마녀사냥으로 몰아 부치고 있는 트럼프가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을까 하는 것이다.

워싱턴정가에서 파면론이 더 확산될 경우 트럼프는 장외 투쟁에 나설 수 있다. 데일리 비스트지의 분석이다. 러시아와의 내통설을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면서 자신을 지지해준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에 직접 다가간다. 일종의 홍위병식의 조반(造反)작전을 전개한다는 거다.

이는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 세력 간의 거리 충돌을 불러와 대규모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유력 타깃은 김정은의 북한, 혹은 회교 수니파 극렬무장집단 이슬람공화국(IS)가 될 수 있다는 것.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여론은 가라앉는다. 그리고 대통령 중심으로 결집된다. 때문에 그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은 섹스스캔들로 하원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이라크 폭격을 명령했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러스 크리토퍼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실각의 위기를 맞고 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국내 어젠다로는 불가능하다. 의회의 견제가 심해서다. 해외정책에서 대통령의 입지는 비교적 자유롭다. 뭔가 만회 책 마련을 위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는 거다.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행정부가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그 같은 가능성에 대비해 당시 국방장관 제임스 슐레진저는 장군들에게 대통령으로부터 핵 공격이 내려지면 반드시 사전에 통보할 것을 지시했다. 초조감에 빠진 닉슨이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탄핵여론이 비등한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다수도 돌아선다. 내각의 각료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트럼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닉슨처럼…. 닉슨행정부 시절 슐레진저와 같이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같은 성숙한 각료의 보좌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 크리토퍼의 지적이다.

전쟁가능성은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탄핵정국은 장기화된다는 것이다.

탄핵여론이 계속 확산된다. 반비례 해 트럼프와 이너 서클의 입장은 더욱 굳어진다. 어떤 상황이 올까. 점증하는 헌정위기와 함께 모든 정책은 올 스톱된다. 해외 곳곳에서 미국의 이해도 도전받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남중국해에서, 동중국해에서, 또 서해에서 도발이 잇단다. 워싱턴은 그러나 속수무책이다. 마비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백악관 발(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일‘이 제발이지 전쟁은 아니기를….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