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밤 10시35분, 당선이 확실시되던 문재인 후보가 달려간 곳은 민주당사가 아니었다. 소위 ‘문빠’로 불리는 열혈 지지자 수만명이 모여 있던 광화문 광장 승리축하 무대였다. 당선자 기자회견은 없었다.
이번 선거는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로 인해 헌정 사상 최초의 조기 대선이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한국 정치사상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치인 팬덤 열기가 뜨거웠던 선거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 바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소위 ‘문빠’가 있었다.
이미 선거 수개월 전부터 대세로 떠올라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문재인 후보의 열혈 지지자들 ‘문빠’ 현상은 과거 ‘노사모’의 열기를 무색케 할 정도로 이번 선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정치적 현상이었다.
특히, 이들의 콘크리트 결집력과 엄청난 화력은 타 후보 지지자들을 질리게 할 정도였다. 물불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이고 집중적인 공격력은 “‘문빠’ 때문에 문재인이 싫다”는 유권자들이 나올 정도였다. ‘문빠’들은 온라인에서 더욱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문 후보에게 비판적인 기사가 올라오거나 댓글이 달릴라치면 소위 ‘좌표찍기’에 나선 문빠들이 떼로 몰려 기사를 쓴 기자나 댓글 작성자가 초죽음이 될 정도도 집중포화를 가했다. 타 후보들도 팬덤열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문빠’의 극성스러움에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타 후보 지지자들 중에는 “요즘 아이돌 가수들의 사생팬들도 이렇게까지는 안한다”며 “온라인에서만큼은 ‘문빠’들의 기세를 당할 수가 없다”고 혀를 내두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유사한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소위 ‘∼빠’ 스타일의 ‘지도자 추종주의’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지지 정치인을 필요 이상으로 극찬하고 상대방은 필요 이상으로 매도하는 양극단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여기에는 서로가 공유하는 ‘가치’나 ‘지향’이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는 전투의지만이 보일 뿐이다. 가히 ’종교적 열정‘이라 할 만하다.
선거가 끝나고 자신들이 지지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이들의 위태로운 ‘빠’ 행태는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주 청와대가 임명한 반부패비서관을 민노총이 “노조 파괴 사측 변호사“라고 비난하자, 이들에게 민노총은 순식간에 ‘귀족노조’이자 청산대상 ‘적폐’가 되고 말았다. ‘귀족노조’는 정반대편의 홍준표 후보의 단골소재가 아니었던가.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상대방이 일리 있는 주장을 해도 자신이 속한 진영의 ‘유불리’만이 유일한 기준으로 작동돼 이중잣대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비판이 없는 팬덤, 소위 ‘∼빠’들의 극단적 행태는 홍위병의 그림자를 소환한다. 각기 다른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해야 하는 사회에서 ‘정의’를 독점하려거나 이중잣대의 칼날을 휘두르는 이들이 위태롭게 보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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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