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10년

2017-05-16 (화) 12:00:00 정고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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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미국에 이민온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기회로 취업비자를 받아 혼자 미국을 왔다. 20대 중반, “사랑하는 뉴욕, 뉴욕~” 너무나 행복하게 JFK 공항에 내린 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한국을 떠나던 그날, 인천 공항에서의 기억이 생생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20년간의 나의 삶을 몇몇 개의 가방에 실어 비행기에 부쳤었다. 그리고 5년. 5년 뒤에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5년 뒤에 오랜 기간 교제하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미국에 남기로 했다.

10년 뒤인 지금의 나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으며, 오랜 시간 정들었던 동부를 떠나 서부에 살고 있다. 이직도 여러번 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취향도, 입맛도, 취미도 많이 변했다.


10년은 긴 세월이다.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나는 10년을 잘산 것일까.나의 10년을 잠깐 돌이켜보자면 분명 잘산 것 같은데, 요즘은 시간이 전광석화같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 자세히 들여볼 시간이 없다.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아버리고 마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쉼표가 필요하다. 가족도 없는 낯선 미국 땅에 처음 왔을 때의 나는 소중히 기억에 남기고 싶은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지금의 나는 가족도 있고, 더 이상 미국이 낯설지도 않다.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비슷비슷하고 별 생각없이 빨리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또 살아졌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나날들이다. 그래서 나는 쉼표 하나를 넣고 비워내는 작업을 할까 생각한다.

쉼표, 한숨 고르기를 통해 10년 동안 이고지고 다녔던 짐을 비워내고, 그동안 만들어진 인간관계들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정신없던 마음, 내 삶에 빈 공간들이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 공간들을 소중한 10년의 추억으로 차곡차곡 채우고 싶다. 나는 앞으로 10년의 삶을 바삐 살아내는 게 아닌 기억에 남는 10년의 삶으로 살고 싶다.

<정고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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