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비의 상념

2017-05-06 (토) 04:56:24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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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미국엔 무척이나 가물었던 몇년 간의 여느 때완 달리 비와 눈이 많이 내렸고,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도 비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무척이나 많이 내렸다.

그래서 수해로 인한 피해도 제법 많이 있었고 힘들었던 경험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올해는 몇 년간의 가뭄이 충분히 해소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동안 바싹 말라 노랗던 언덕들은 건강한 녹색으로 변하고, 하늘은 더욱 푸르러, 이 오월엔 즐거이, 모두가 다 함께 소중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소생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목이 말라 외치다 외치다 가녀린, 속도 없는 대롱같이 되어 꺾여 지고만 있었던, 마른 풀로 가득찬 언덕과도 같았던 나의 마음도 이제 내리는 비와 함께, 언덕 위의 되살아나는 생명들과 함께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무엇이 비의 선물인 이 오월의 기운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말라있던 이 대지가 생명을 받은 것처럼 나도 그리 살아 보아야지, 나도 그렇게 작업해 보아야지....


대지 전체에 쏟아져 내리는 저 빗소리/ 그 소리는 하나의 울림으로 들린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빗방울들이 큰 울림의 소리를 만든다/ 비는 말라있는 대지를 토닥 토닥 치고 친 위를 또 치고 , 굳어 있는 내 마음도 친다/ 비가 땅을 어루만지듯이 그렇게 나도 캔버스를 어루만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그림을 그린다/ 대지에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처럼 줄기차게 그린다/ 비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 비가 땅을 만났을 때 행복한 것처럼 나도 그저 그렇게 행복하다// 비가 그 무엇을 의식하는가/ 비는 너무도 자유롭다 /결국엔 나는 비 그 자체가 되고 싶다/ 어느새 비는 땅과 하나가 되고 사방은 고요하다 /이제 비의 작품은 완성되고 땅은 생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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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씨는 2003년 미국으로 이주해 현재 샌리앤드로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앙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으며 이후 개인전과 그룹미술전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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