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연휴에 드는 생각

2017-05-06 (토) 한수민 국제로타리 클럽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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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5월초 황금연휴에 최장 11일을 쉴 수 있다고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휴일은 어린이날과 석가 탄신일 정도인데, 아무리 주말을 낀다고 해도 어떻게 11일을 놀 수 있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5월3일(수)은 석가 탄신일, 5일(금)은 어린이날로 공휴일이고 5월1일(월)은 ‘근로자의 날’로 대부분의 대/중견 기업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5월9일(화)은 대선일로 임시공휴일이다 보니 2일과 4일만 휴가를 내면 4월29일(토)부터 5월9일(화)까지 11일을 계속 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는 한국이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번에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두 가지 관점에서 새로웠는데, 하나는 한국이 전 세계 다른 나라들(미국만 빼고)처럼 5월1일, 메이데이를 기념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명칭이 ‘노동절’이나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근로자의 날’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 존재감은 지극히 미미했다. 하여 언제부터 5월1일로 옮겨져 기념하게 되었을까 하고 찾아보니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근로자의 날’의 위상도 많이 달라진 듯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동절이란 제 명칭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근로자와 노동자는 얼핏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근로자는 말 그대로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순종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데 비해, 노동자는 아무래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기에 껄끄러운 듯하다.

노동절 즉 메이데이는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1886년 5월1일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하라는 8만여명 노동자들의 파업 집회가 있었다. 집회가 이어지던 5월3일, 시카고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실탄을 발사해 4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날, 이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가 다시 열렸는데 이때 누군가 폭탄을 던져 경찰관7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집회를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투쟁을 이끌었던 노동자 8명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폭탄 테러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결국 4명이 교수형을 당하고, 1명은 감옥에서 자살했으며, 나머지 3명은 세계적인 항의운동으로 석방된다(폭탄을 던졌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이 노동절을 탄생시킨 저 유명한 헤이마켓 사건인데, 정작 사건이 발생한 미국에서는 노동절이 5월1일이 아니다. 이는 노동운동이 사회주의 운동과 결부되는 것을 미국 정부가 우려한 때문이었다(시카고 시위 당시에도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공산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결국 미국의 노동절은 여름이 끝나가는 9월 첫째 주 월요일로 정해졌고 1894년 연방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후 미국인들에게 노동절은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지금의 시각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근로조건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의 희생을 되새기는 날이라기보다 마지막 여름휴가를 즐기는 날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연휴를 즐기는 시민들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분들도 자신들이 피 흘려 이룩한 성취를 후손들이 누리고 있으니 무덤 속에서나마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려나. 다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거저 생겨난 것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도 후손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만은 마음속에 새겼으면 한다.

<한수민 국제로타리 클럽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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