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쇼트트랙

2017-04-30 (일) 11:05:04 장수진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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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이 얼음가시 되어
서로를 찔렀다

물개가 유영하듯
링크 위를 돌고도는 아이들
바람을 가르고
날카로운 쇳소리에 몸을 부딪고
빙판 위로 뿌려지는 진홍 선혈
세계를 제패했던 코치의 황금빛 영광도
이 한 판의 승리만이 그 명예를 지켜줄 뿐
거기에,
출발에 선 어린 딸아이가
희번덕이는 칼날을 발에 채우고
쿵쿵대는 심장을 얼음장 위에 꽂고
서 있었다
죽여야 사는 곳은 전장
패배자들에게 줄 위로란
한 여름 뙤약볕에 녹아나는 솜사탕이지

그래도 미련이 남아 있다면
가시 돋친 얼음판을 안아야겠다
타인의 손톱 밑까지 파고들어도
얽히고 설킨 가시의 끝에 깊숙이 닿아도
아프지 않게 그렇게, 있어야 한다
그렇게 공기가 되어서라도 꽉 안아야 한다

차가운 링크 위로 따뜻한 숨을 내쉬고 싶다

<장수진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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