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춘기 자녀 엄마 5계명

2017-04-29 (토) 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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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들은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북한이 한국에 쳐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한국의 중2들이 무서워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사들은 중2 담임을 꺼린다고 할 만큼 중2병이 대세인데, 백과사전에까지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사춘기 자아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 상태, 또는 그로 말미암은 반항과 일탈 행위를 일컫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전에는 고등학생이 되어야 사춘기라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짜증내고 반항해도 이해하라고 했엇는데 이제는 모든 게 빨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고, 요즘 들어 말로만 듣던 그 무서운 중2병이 내 아이에게 나타난 것 같다. 갑자기 심하게 짜증을 부리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가 하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는 맨날 성적얘기만 하니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나를 내버려둬라, 알아서 하겠다’ 등등 전에 없던 말들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울기도 하고 다 때려치우겠다는 등의 과격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평소에 하던 대로 숙제는 빼먹지 않았는지, 숙제를 왜 소홀히 하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준비는 잘 되는지…를 물었는데,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면서 엄마를 거부하니 나에게도 충격이 왔다.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보니 이 나이 때의 증후군과 부모들의 대처방법이 참 다양하게도 나와 있다. 각종 글들을 읽고 뒤적이며 옆에 딱 붙어 앉아 안아달라고 하던 아이가 이제 커서 어른이 되어가는 연습을 하느라 앓는구나 싶으니 서운함과 아쉬움이 몰려든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중간에서 어떤 날은 아이처럼 굴다가 어떤 날은 어른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던 미안함도 커진다. 너무 황당해서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이대로 아이와 냉랭한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어 주위에 조언을 구하고 자료를 수집해 본 결과 나만의 계명을 만들었다. 일종의 사춘기 엄마 5계명이다.

1, 입을 다물어라- 아이에게 하던 말, 특히 잔소리를 확 줄여야한다. 한번 말해 안 들어도 반복하지 않는다. 2, 강의를 하지마라- 어른과 대화 자체를 안하려고 하는 이유가 어른들이 시시콜콜 뭔가를 가르치려 들어서라고 한다. 3, 결정권을 줘라- 본인이 할 수 있는 결정은 하게 해라. 단 결과에 대해 책임지게 해라. 4, 존중해라- 아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어른처럼 존중해라. 5, 포커페이스를 해라- 아이가 말할 때 표정관리를 해라.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말을 할 때 놀라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입을 닫는다. 속으로만 표정을 짓고 겉으로는 무심하게 해라.

이렇게 계명을 만들었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뒤집어진다. 이 길이 아니라 저 길을 가면 더 좋을 텐데…하면서 아이를 유도하고 싶어지고, 지금 안하면 내일 힘들 텐데 싶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어진다. 아이가 하는 말에 토를 달고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정말 지키기 어렵지만, 아이와 나의 관계를 위한 고통스러운 계명들이다.

인생은 연습이 없어서 한번도 못가본 길을 날마다 가는 것과 같다. 결국 내가 진정으로 아이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물 흘리며 고민해본 끝에, 나의 결론은 관계로 내려졌다. 아이가 내게 등을 돌려도 실패 없이 가도록 하는 것에 집착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고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하더라도 가족과의 친밀감을 지켜갈 것인가.

하버드대 75년간의 연구에서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결국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결과를 보고도, 이렇게 고민하다니 나 스스로에게 답답한 일이다. 며칠 잔소리를 줄이고 지켜보니 아이가 훨씬 편하게 엄마를 대하기 시작한다. 다시 허그를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시작한다. 얼마나 행복한 변화인가. 나에게 주는 사춘기 딸 엄마 5계명, 냉장고에 붙여놓고 날마다 되 뇌이며 지켜볼 생각이다.

<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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