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생화들에 예의를

2017-04-22 (토) 폴 손 엔지니어
작게 크게
때때로 우리는 자연의 경이를 목격한다. 이 목격한 바를 통해, 배우고, 연구하고, 대비하고, 자연을 정복하기도 하고, 자연에 굴복하기도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연은 끊임없이 인간을 교육시킨다.

지난 4년 간 캘리포니아는 가뭄으로 인해 지하수마저 고갈되어 하늘을 바라보며 무심하다고 원망을 했다. 이젠 저수지의 댐이 무너질 정도로 비가 내려 또 한번 하늘을 향해 무심하다고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수도 다시 채워지고, 뉴스는 야생화가 만발한 장면을 전하기에 바쁘다.

야생화를 잘 관찰해보면, 색상의 배합을 배운다. 보라색 옷을 입으면 노란 색의 스카프가 어울린다. 검은 색의 옷에는 빨간 색의 스카프가 액센트를 더하지만, 빨간 색의 옷에는 검은 색의 스카프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인 지오르게토 지우지아로(Giorgetto Giugiaro)는 니콘의 프로용 필름 카메라 F3를 디자인하면서 검은 색에 빨간 줄을 손잡이 부분에 액센트로 포함시켰으며, 이후 이 빨간 액센트는 니콘 카메라 디자인의 표준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에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비가 내리면서 많은 사진 애호가들을 흥분 시켰다. 하지만 비바람은 흙 속에 숨어 싹이 트려는 씨앗들을 다른 지역으로 날려 보내기도 해서 야생화의 분포가 변화되었다.

예를 들면, 올해 데스밸리 국립공원엔 심한 비바람으로 작년의 야생화 풍년만큼 미치지 못해 사진 애호가들을 실망 시켰다. 그래서 야생화가 어디에 만발했는지 사진 작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 서부지역에서는 해마다 1월말 팜 스프링스 근처의 안자 보레고 주립공원을 시작으로 북상하여 8월에는 워싱턴 주의 산악지대와 알라스카까지 만발한다.

올해엔 남가주 랭캐스터 인근의 파피 보호구역보다도 먼 산이 더 만발한 파피로 덮였다.

베이커스 필드에서 58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50마일을 가면, 카리조 플레인(Carrizo Plain) 준 국립공원이 나온다. 이 준 국립공원에는 샌 안드레아스 지진단층이 지나고 있고, 2006년 서울대 지질학과 학생들이 연구차 방문하는 길에 차량이 전복되어 한 여학생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올해는 2010년 이후 최고 절정으로 야생화가 만발해서 너도 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이 지진 단층이 통과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트레일을 통해 템블러 레인지(Temblor Range) 쪽으로 가면 노란색, 보라색 등 온갖 색상의 야생화들이 무리를 지어서 피어있다. 소다 레이크 길을 타고 166번 도로까지 가는 길에서도 만발한 야생화들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사방이 야생화 만발이다.

매일 야생화 만발 지역을 알려주는 웹사이트(www.desertusa.com)도 있다. 한 때엔 선셋 잡지에 기고하는 캐롤 리(Carol Leigh)가 운영하는 사이트( www.calphoto.com) 가 최고 권위의 야생화 소식을 전하는 곳이었지만, 캐롤은 자신이 야생화 만발 지역을 알려줌으로써 야생화들이 등산화에 짓밟히는 사실에 분노하며 사이트를 취소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사람들의 등산화는 이들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야생화 채취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야생화는 야생으로 한평생 살다 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만 이 풍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같은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한다. 그렇게 우리는 야생화들에게 예의를 표해야한다.

<폴 손 엔지니어>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