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여행을 다녀오면 허무하다. 세끼 밥 잘 먹여주고 좋은 호텔에서 재워주고 차 편을 대령할 뿐 아니라 안내인까지 있어서 가는 곳곳마다 볼거리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까지 친절하기 그지없는 설명을 해 주건만 돌아오면 마치 사기라도 당한 것도 같고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여행 정보를 공부하고 계획을 짜서 힘들여 예약하고 지나가는 이 붙들고 물어 물어 찾아가는 품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고생 싫어하는 건 인간의 당연한 심리겠으나 한편으론 고생 안하고 공으로 얻게 된 것엔 애착이 없으니 그게 바로 인생의 모순이 아니겠는지. 아씨시엘 다녀 왔다.
이젠 어딜 가도 그저 한 군데에 있기로 하고 이번에도 그냥 아씨시에서 열흘 넘게 있었다. 많은 곳을 다녀본 적은 없지만 내가 다녀 본 곳 중에 아씨시만큼 수 천년 세월이 고스란히 남겨진 곳은 못 본 것 같다. 도시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천천히 걸어다녀도 얼마 시간이 들지 않는 작은 성이 지금도 여전히 그 옛날의 건축물들 뿐이다. 그 옛날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 길과 길을 이어주는 층계길이 숨바꼭질하듯 고스란히 있다.
온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오는 탓에 모든 골목에 기념품 가게가 빼곡하지만 어디에도 제법한 식품점 하나 없이 손바닥만한 구멍 가게에서 모든 일상용품을 구입하는 것 같다. 불편하다. 먹고 입고 쓰는 생필품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옛날엔 도대체 무얼 먹고 살았을까? 아침에 도시 한 가운데의 광장에 나와 보면 작은 트럭들이 야채와 빵, 음료수 등을 내려놓고 거리를 치우는 청소부는 제 집 앞마당 쓸듯 인적 드문 광장을 빗자루질 한다. 아씨시는 지오토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프란치스코 성당을 위시해 끼아라 성당, 루피노 성당등이 유명하지만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아도 크고 작은 성당과 채플들이 골목마다 수없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상에 나올 때 난산으로 고생을 하는데 지나가던 거지같은 행색의 순례자가 그 아기는 지금 있는 곳이 너무 호화로워 못나오는 거라고 마굿간으로 옮기면 나올 거라고 했다 한다. 그렇게 해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태어나게 된 마굿간은 그의 죽음 후 조카의 손에 의해 채플로 꾸며졌다. 기껏 차 한 대가 들어갈 만한 거라지 크기. 그 아담한 채플엔 네 개의 작은 벤치가 놓여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건 그런 때 쓰는 말 같다. 그 모든 성당 중 가장 크고 의미있는 곳은 프란치스코 대성당일터이다. 우선 이 성당에는 성인의 시신이 묻힌 묘가 있고 성인이 초창기부터 함께 생활하고 활동한 네 명의 형제가 함께 안장되어 있으며 그가 일생동안 입었던 나달나달 기운 수도복과 샌들 등의 유물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성당의 벽엔 지오토가 성인의 일생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지오토의 그림에는 무언가 청아한 공간이 있고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안정감이 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아콰 그린 역시 맑고 개운하다.
이태리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만큼이나 영어를 못한다. 뮤지움에 있는 남자가 개관시간이 되어 문을 열며 인사를 하길래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한다고, 반갑다고 했더니 필라델피아에서 온 사람이란다. 프란치스코 재속회 회원으로 아내와 함께 아씨시 외곽에 사는데 느리게 살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 참으로 만족스럽다 한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밥 먹고 가까운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고 골목 골목을 오르락 내리락 걷다가 숙소에 돌아와 쉬다 다시 나가 걷고 성당가고 돌아와 누워서 책 읽고..., 인터넷이 느려서 아예 잊고 티브이는 이태리말만 나와 그것도 잊고 세월이 가는 것마저 잊어 버리고 그렇게 지냈다. 무엇을 이룬다거나 어떤 걸 갈망한다거나 누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일 없이 그냥 그런 시간을 느리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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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