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디톡스
2017-04-05 (수) 12:00:00
이현주(주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일 아침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식이 조절을 시작하기에 앞서 디톡스, 즉 해독의 과정을 거치면 몸 속의 묵은 독소가 빠져나가 좀더 빠르게 살이 빠진다는 친구의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동네의 주스 전문점에 가서 주스 여섯 병과 해독 음료 두 병으로 구성된 1일 주스 디톡스 세트를 구입해 왔다. 그 알록달록한 주스 병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생각했다. 내 안의 진짜 독들은 이런 것으로 사라질 리가 없지 않은가.
지난 몇 년 간, 나는 나의 육체에 무감했다.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나라를 떠나 이 곳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 줄곧, 내가 꿈꾸던 삶은 여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살면서 좋은 일만 있던 것도 아니고, 그곳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많았지만, 나는 역시 서울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고, 나는 끈질긴 미련과 작별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긴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참으로 미련이라는 단어는 어찌 그리도 미련하고 지리멸렬한 울림을 가졌을까? 들끓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니 점점 외모에 관심이 없어지고, 미련할 정도로 살이 찌고 말았다. 나는 지금 몸도 마음도 미련한 인간이다. 내 안에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의 응어리들은 주스 여섯 병 따위로 치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서울은 요즘 지독한 해독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배를 불려 온 거대한 추문들이 햇볕 아래 끌려 나와 흠씬 두들겨 맞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검댕이 묻은 자들은 어찌 면피를 해야 할까 고민이겠지만, 전 대통령도 구속 수사를 받는 와중에 죄인이 매 타작을 피하기란 사람의 아들이 아닌 신의 아들이라도 힘들 것만 같다.
물론 이 난리를 지켜보는 쪽도 속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시끄럽고, 어수선하고, 코스피 지수가 걱정되겠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디톡스에는 독소가 배출되며 고통을 유발하는 명현 현상이 따르는 법이라고 하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잠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해독을 중단하는 것은 눈 앞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 만큼이나 미련한 짓이다. 심지어 나 같은 미련퉁이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모두들 조금만 더 힘내시라.
<이현주(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