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방랑 혹은 도전

2017-03-27 (월) 김진아 소셜 네트웍 광고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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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혹은 도전
또 다른 나라다.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해야하는 삶을 선택했다. 물론 ‘선택’을 했다고는 하나, 오래전 호주로 떠나거나, 미국 또는 말레이시아로 떠났던 것과는 조금 다른 과정이긴 했다. 새로운 공부나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기보다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기회가 생겼고, 선택을 하긴 했지만 수동적인 방식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좀 더 쉬울 줄 알았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20대부터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짐을 싸고 풀고 했던 횟수는 삼사십 번은 족히 넘을 것이다.

때론 까만 이민 가방에 옷가지를 대충 쏟아 넣고 떠난 곳도 있었고, 어느 순간엔 살림이 늘어서 이사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도 했고, 그 무거워진 짐들이 부담스러워 하나씩 덜어내고, 맨몸으로 떠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짐을 싼다. 옷, 신발을 제외하면 큰 짐이라고 할 것도 없다. 사는데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짐을 싸다 보면 항상 느끼게 된다.


얼마나 살게 될지도 모른 채, 이번에 떠나는 곳은 싱가포르이다. 여행과 출장으로 수십 번도 넘게 드나들었던 나라. 하지만 막상 살려고 보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막막하다. 이번엔 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단순히 나이가 좀 더 들고, 체력이 저하되고, 머리가 둔해져서 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해도,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결코 익숙해지지도 쉬워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왜 난 또 떠나는가…스스로에게 묻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보란 듯이 새로운 모험을 던져준다. 그래서 잠시도 한눈을 팔거나, 꾸벅 졸면서 나아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안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삶의 터전, 환경에 적응하고 또다시 익숙해질 것이라고. 시간이 좀 걸릴 뿐, 어디를 가나 인간사 큰 차이 없다는 것. 먹고 살기 위한 분투, 그리고 드물게 찾아오는 평온의 시간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싱가포르이든…그 어디서든 마주하게 되는 삶의 보편적 모습이며, 결국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다.

여전히 이런 내 삶의 패턴의 근본 원인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다. 그것을 도전이라 부르든, 방랑이라고 부르든, 힘들어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삶을 기꺼이 선택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 내가 살아온 방식이자, 살고 있는 방식이다. 힘들고 어렵고 두렵지만, 또 어떤 새로운 삶이 펼쳐질지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어차피 예상할 수 있는 삶은 없다. 닥치는 대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경험을 통해 배운 삶의 유일한 기법이다.

<김진아 소셜 네트웍 광고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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