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뒤뜰에서
2017-03-11 (토) 12:00:00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
비 온 뒤, 나대지를 가득 메운 노란 유채꽃이 더욱 싱그럽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더니 어느새 한 겹 덧입은 웃옷이 답답하다. 이번 겨울에는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왔다. 지난 6년간의 가뭄을 해결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지나친 폭우로 댐이 넘치기도 하고, 곳곳에 침수 피해를 보아 수재민까지 발생하게 되었으니 넘치면 부족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북가주에서는 정부의 절수 정책으로 잔디밭에 물 주는 것이 제한되어 있었다. 매년 여름이 되면,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빛에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뜨락의 나무들은 연일 내린 비에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누렇다 못해 잿빛으로 변해 버린 뒤뜰의 잔디밭에선 뾰족뾰족 초록의 잔디가 올라오고 어느 틈엔가 민들레며 이름 모를 들풀들도 자리잡고 앉아 있다. 입춘이 지나자 완연히 봄이 된 듯, 바람은 벌써 온기를 품어, 몸을 스쳐도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다. 언제 이렇게 피어났는지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자두나무는 눈부시게 하얀 꽃 가득 매달고 살짝 부는 바람에 눈처럼 하얀 꽃잎 뿌려주고 있다. 이제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는 연분홍 살구꽃 보며 특히 살구를 좋아하는 나는 유월이 되면 먹게 될 살구 생각으로 즐겁다.
여기저기 웃자란 잔디가 보기 흉해 에지 깎는 기계로 다듬어 주고, 듬성듬성 자리잡은 들풀들도 더 퍼지지 전에 뽑으려고 했다. 무심코 민들레 한 뿌리 뽑으려는데 햇빛 받아 환한 노란 꽃잎이 나를 보고 웃는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국화꽃을 닮은 듯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들꽃“이 가슴에 와닿는다. 들풀이어도 이토록 예쁜 것을, 정갈하게 가꾸어진 잔디밭도 좋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운 들풀 꽃밭도 나름대로 멋들어질 것 같아 잔디밭 가꾸는 일을 멈춘다. 손길을 타지 않아 들판으로 변한 잔디밭엔 유채꽃과 이름 모르는 작은 들꽃들이 찾아와 맘껏 꽃피우리라. 아직은 꽃망울만 더덕더덕 붙어 있는 체리 나뭇가지 위에 성급한 무당벌레 한 마리 진딧물 먹을 생각에 벌써 나와 있고, 파란 깃의 이름 모를 작은 새들 날아와 가지 위를 오가며 즐겁게 노닐고 있다.
이 봄, 뒤뜰에 찾아온 들꽃을 보며 들꽃 같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오래 사귈수록 사랑스러운 들꽃 같은 사람으로.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