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든든한 한 끼

2017-03-02 (목) 12:00:00 송미영(모퉁이돌 한국학교 교사)
크게 작게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소고기 뚝뚝 썰어 국물을 내고 있는데 육수 냄새가 구수하다. 큰 딸의 생일 아침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생일날에 꼭 먹어야 하는 대표 음식이 미역국이라 할 것이다. 이 미역국에는 단순히 영양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구수한 이야기가 골고루 들어가 있어 먹을 때마다 감미롭다.

동네 빵집을 1주일이 멀다하고 한달 내내 드나들면서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케잌을 사 나른다. 추운 겨울 같은 달에 우리 가족 반이상의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김없이 고기 미역국에 하얀 밥과 딸이 좋아하는 잡채랑 몇가지 음식을 푸짐하게 해서 친구들과 먹도록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그래야 자식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고 여기셨나 보다. 이렇게 생일이 들어 있는 겨울이 신나고 좋았던 나의 결혼 전 추억이다.

우리 딸들이 생일에 대한 의미를 배우기 시작할 때, 남편은 ‘생일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이다’라고 가르쳤고, 그렇게 알고 자란 딸들은 자신의 생일날이 되면 나름대로 효도하려고 무엇인가 할 거리를 찾는다. 그것이 설거지이거나 엄마의 손을 주물러 주는 일이 될 때도 있다. 큰 딸이 눈 비비고 일어나 엄마가 만들어 놓은 미역국을 보면서 ‘내가 미역국 끓일려고 했는데….’ 하면서 늦은 아침상을 열심히 차린다.


날이 좀 춥거나 뭔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 우리 딸들이 시험을 보는 날이거나 어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거의 미역국을 끓여 밥을 말아서 후르륵 먹인다. 심한 냄새도 나지 않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한 끼가 된다. 몇 년 전 우리 가족 모두가 중요한 인터뷰가 있는 날 아침에도 입 맛 없어 힘들어 하는 가족에게 미역국 한 그릇씩 먹였는데 긴장감도 덜어주고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지금은 미역국 한 솥을 끓이고 나면 집 떠나 사는 딸을 위해 조금씩 팩에 담아 꽁꽁 얼려서 보내준다. 공부하느라 정신없지만 가끔 따뜻한 국물 먹고 싶을 때 데워 먹으면 맛도 좋고 든든하다고 한다. 모든 기력을 아기 낳는데 쏟은 산모를 위해 푹 끓인 미역국, 몸조리하는 내내 먹이고 또 먹는 이 미역국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힘이 솟는 것 같다. 미역국 끓이면서 자식 생각 하라고 미역국 먹으면서 엄마 생각하라는 미역국은 영양은 물론 세상을 향해 든든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담겨져 있는 든든한 한 끼가 되고 있다.

<송미영(모퉁이돌 한국학교 교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