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좋은 선생님

2017-02-18 (토) 12:00:00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
크게 작게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적어도 열두 분에서 많게는 사십여 분의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한 분이라도 훌륭한 선생님 혹은 최악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인생의 운명이 확 달라진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바에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듯 특별한 악연없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는 편이 차라리 낫다.

대학 졸업반 때 교생 실습을 나갔던 학교에서 반장을 맡았던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아주 존경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고 숫기도 없어서 주변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담임 선생님이 반장으로 임명해주어 반장이라는 타이틀에 맞추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고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성적순으로 반장을 뽑지 않고 그늘에 있던 아이에게 기회를 주어 아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그 선생님은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선생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 “깡통 소변”이라는 기사가 났다. 5년 전 발생한 일의 소송결과를 다룬 내용이었다. 샌디에고의 어느 학교에서 한 여고생이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려고 했으나 교사는 비품실에 있는 깡통에 볼일을 보라며 화장실에 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교사의 말 대로 깡통에 소변을 본 학생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 수치심에 전학을 가기도 했었고,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십여 년 전 미국에 왔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은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자주 갔다. 소변을 자주 보는 체질인 데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이니 긴장이 되어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담임 선생님은 부모인 우리를 여러 차례 불러 아이에게 소변을 참는 버릇을 가르치라고 요구했다.

전학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데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로 전학해온 아이가 긴장해서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웠었다. 원칙만을 중요시하는 미국인의 사고 방식은 때론 배려심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에 적응이 되자 딸은 더는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는 일이 없어져서 큰 문제없이 청소년기를 지나갔지만 까닥했으면 깡통 소변은 우리 애의 경우가 될 뻔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나마 부모인 우리를 호출하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