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교회는 세상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

2017-02-12 (일) 이종국 기자
크게 작게

▶ ■ 38년 목회 은퇴하는 성십자가 교회 한성규 신부

“드디어 그만 둔다니 눈물도 나고, 지난 세월도 되돌아보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의 메시지를 제대로 구현했나 하는 후회도 들고 합니다.”
지난 38년, 한국과 워싱턴에서 사랑과 공의의 실천을 위해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한성규 성공회 신부(66, 성 십자가 교회)가 은퇴한다. 오는 22일(일) 오후 3시 은퇴식을 갖는 한 신부는 지난 섬김의 시간을 ‘사랑과 정의’를 갈구한 삶이라고 정의 내렸다.

사랑과 정의 세우는데 주력해
한국의 시골교회서 봉사 계획

그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의 죽음에는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동시 들어 있으며 하느님이 죄인의 죽음을 대속하는 사랑으로 세상에 정의를 세우셨다”면서 “사랑과 정의는 분리할 수 없으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신 그 사랑의 정의를 선택하여 구원 받을지, 그 선택은 제 자신 앞에 있었으며 또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한성규 신부는 아무도 기독교 신자가 없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특별한 신앙 이력을 갖고 있다. 경남 사천생인 그는 부산대 물리학과를 다니다 영어 동아리에서 만난 영국 선교사를 통해 여러 신부들과 인연을 맺고 성직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성공회 신학대학원을 다녔고 2007년에는 리전트대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는데 동양에서는 원수를 갚아 정의를 세우는 걸 미덕으로 여겨 그 명제를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내 자신이 하느님에게 원수였다는 걸 깨닫고 내가 은혜로 용서받은 것처럼 서로 용서하며 사랑으로 어떤 사람도 품어야 된다고 받아들였다”고 흔들렸던 신앙의 길을 고백했다.
1979년 경북 상주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고 87년부터 부산 서면에서 신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주력한 그는 1992년 워싱턴으로 왔다.

이천환 신부가 84년 버지니아 알링턴에서 문을 연 첫 성공회 교회를 이어 받아 2000년 폴스처치를 거쳐 2013년부터는 페어팩스 시티로 교회를 옮겨 목회 활동을 해왔다.
한 신부는 이민교회라는 문화적 특성에 맞춰 한글과 역사교육, 코리언 아메리칸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긍심 배양,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장으로서 등 세 가지 영역에서 사역에 몰두했다.

“한인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과 생활을 몸으로 온전히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성직자가 권위를 앞세우면 안 되고 신부 이전에 사람으로 만나야 하고 인간적으로 통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나를 바꿔 놓았고 목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교회가 영혼 구원과 함께 사회정의를 이루는데 나름의 역할을 감당하게끔 노력해왔습니다.”

그는 교우들의 사랑에 힘입어 지금까지 무탈하게 사역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또 동역자로서 함께 해준 부인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특히 자신의 아들도 성직자의 길을 걷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2007년 버지니아 성공회 사제가 되어 영국을 거쳐 현재는 홍콩에서 사역 중이다.
한 신부는 은퇴 후 몇 개월 쉬었다 8월경 한국으로 가 시골 교회에서 사역을 당분간 더 할 계획이다.

40여년 크리스천의 길을 걸어온 그는 마지막으로 요즘 기독교의 세속화 경향에 대해서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축복과 성공을 빌고 기복을 하는 게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세속적으로 잠식되면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합니다. 세상을 위해 있는 게 교회이지 교회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의 메시지를 등한시 하지 말고 거듭나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종국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