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에서부터 만리장성, 베를린장벽, 앞으로 세워질지도 모를 멕시코 장벽까지 장벽은 분리를 의미한다. 나에게 맞닥드린 수많은 장벽 중에 언어의 장벽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고도 높은 벽이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올 때 딸아이 나이는 다섯살이었다. 한국에서는 책도 읽고 간단한 글도 적던 딸아이는 한국사람이 드문 중서부 작은 도시로 이민오자 아주 빨리 영어를 배우면서 그만큼 빨리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그때 나는 타코를 두개 시켰는데 이십개가 나오는 해프닝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반면 딸아이는 어느새 영어로 말하고 싶어 옆집 아줌마가 정원일하는 걸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그녀가 보이면 얼른 뛰어나가 한참 수다를 떨다 들어오곤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려고 애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중 딸아이가 고등학교 때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에 가니 딸아이는 한국말을 열심히 하려고 여간 애쓰는 게 아니었다. “엄마 우리 거기 한번 더 가자” “어디?” “명동실” 거실, 욕실 하는 걸 듣더니 명동을 “명동실”이란다.
“엄마 나 늦을까봐 걱정나.” 이건 또 “생각나, 화가나”에서 가져다 부쳐보고. 그때 걱정나, 명동실, 이 말들은 친척들간 유행어가 되었었다. 그렇게 한국말이 늘어서 나중엔 내가 김치를 할 때 도와주는 딸아이에게 김치병을 주면서 “이것 좀 부셔“ 했더니, “아니 이 멀쩡한 걸 왜 부셔?” 할 정도가 되었다.
멀리서 공부를 마치고 사회인이 된 딸이 한번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딸아이는 사춘기 때 너무 힘들었다고, 그 이유는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께 사랑을 듬뿍 받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단다. 친구 부모들은 “알러뷰 “ “굿 잡”을 연발할 때 우리는”빨리해”, “좀 더 잘해”만 얘기해서란다. 그래, 우린 “사랑해”란 말을 참 안하는 편이지…..딸과 나는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이십년을 살아왔구나 하고 마음이 아팠다.
하기사 우리는 지난해 여행 중에 바오밥나무를 보고 우리 둘이 어린왕자를 참 좋아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지 않았는가, 딸은 다 커버렸는데….. 하지만 우리는 이 장벽을 사랑이라는 망치로 열심히 허문다. 또한 이해와 노력의 정을 가지고......딸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엄마 나 돈 피료해” 나는 눈에서 하트가 번쩍이는 이모티콘과 함께 얼른 답장한다. “ㅇㅋ,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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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정(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