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설날

2017-01-28 (토) 12:00:00 임무영 KP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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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민족의 최대명절인 설날이다. 미국에선 음력설을 ‘중국의 새해’라고 부르고 학교에 따라서는 아이들에게 ‘Kung Hei Fat Choi’라는 중국어 인사를 가르치니 이곳에서는 그다지 설날같은 기분이 안들지만, 한국시간으로 설날아침이 되어 화상통화를 해보면 한국은 정말 활력이 넘쳐 보인다.

친척들이 북적이고 음식냄새마저 풍겨올 듯이 보이는 전화기 너머로는 다들 모여 제대로 명절을 쇠고 있는데, 이곳은 설날도 그저 평범한 하루라는 핑계로 흐지부지 보내다보니 아이들도 설이나 추석을 수퍼보울선데이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러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명절의 전통예식도 모르는 세대가 되어 버리진 않을까 싶어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어릴적 설날 아침이면 할머니가 물 묻혀가며 귀밑머리를 촘촘히 따서 댕기를 달고 한복을 입혀 주시던 일, 온 가족이 어른들께 돌아가며 세배를 마치고 나면 큰 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먹었던 기억, 정초 인사를 오시는 분께 대접하느라 하루종일 집에선 전과 불고기냄새가 가득하고, 날아갈 듯 올리는 세배 한번에 머리쓰다듬으며 쥐어주시는 세뱃돈으로 신났던 추억들…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음속의 재산이거늘, 우리 아이들은 이런 기억없이 어른이 되면 명절에 관해 무엇을 추억할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작년 설에는 아이들의 어릴적 친구가족들과 모두 한복을 입고 모여 세배를 하기로 했다. 방학도 연휴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설날에 모이기란 쉽지 않았지만, 애들이 더 크면 정말 어렵겠다 싶어 내린 큰 결정(!)이었다.

모두 모이니 집은 좁고, 떡국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지만 역시 명절은 북적대는 맛인것 같았다. 다 먹고나서 열댓명이 넘는 아이들에게서 합동 세배를 받을때는, 일일이 덕담을 해주는 동안 제 차례를 기다리며 무릎꿇고 앉아 기다릴 줄도 알고, 한국말로 하는 덕담을 눈치껏 알아듣고 자기 생각도 말하는 것을 보니 기특했다.

덕담 대신 부모로부터 바라는 신년소망이 있느냐는 돌발 질문에는 하도 기상천외한 대답들이 나와서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고, 세배가 끝나고는 저녁까지 가족대항 윷놀이를 하면서 조금은 설답게 보낸것 같아 뿌듯했다.

이 하루가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설날의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길 바라면서, 문화 전통은 저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임무영 KP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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