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사람의 분류

2017-01-19 (목) 12:00:00 김수희(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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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들이 정해 준 이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여성, 동양인 등 내가 내 것이라 말한 적 없어도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 이미 정해 놓은 이름이 몇 개씩은 주어진다. 굳이 태어날 때에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도 우리가 크며 배우는 이름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아, 너 채식주의자(vegetarian)구나,’ ‘아 해산물은 먹어? 그럼 부분 채식주의자 (pescatarian)구나’ ‘너 동물 보호 옹호자이구나’ 등 내 식단의 일부분으로 나에게 새로운 내가 한 번도 쓰지 않아 본 이름들이 주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냥 내 체질에 잘 맞아서 고기를 안 먹는 건데…… 하지만 가끔 이렇게 사람들을 다른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싶다. 나는 내 피부색, 내 성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식단, 내가 입는 옷, 내 머리 길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자신의 신념이 있는 사람인데 단면적인 것들로 이름들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것이 가끔씩은 불편하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사람들을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물학 또한 시초가 되었었다 한다. 생물학은 사람들의 인종을, 성별을 분류해서 백인, 흑인, 동양인으로 나뉘었고 어떤 생물학자들은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남성의 지능이 여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등 나쁜 방법으로 분류한 이름들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람의 분류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다 같은 사람인데도 동양인은 이렇다, 흑인은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남자는 이렇다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을 분류한 것들이 고정관념이 되고 그 고정관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무언가를 뺏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름이 사람들에게 이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름으로 분류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때도 있다. 내가 여자라고 했을 때에, 여자라는 정체성으로 여자로서 힘든 것과, 우리 사회에서의 고정관념으로 내가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 공감대도 생긴다.

하지만 이런 이름들은 한 사람의 일부분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 사람의 정체성의 부분을 이해하는 것으로만 사용하지 그 이름 뒤엔 모든 사람들이 나와, 우리와 같은 사람인 것을 잊지 않고 바라보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김수희(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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