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그만 미안해하기

2016-12-29 (목) 12:00:00 김수희(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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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년 계획을 세웠었다. 3kg이라도 좀 빼려고 해보기, 이제는 비록 학생이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 계속하기 등 뭐 어디 써놨는지 무엇들이였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것 보면 제대로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여러 개인 것 같다. 하지만 그중에서 딱 하나 기억나는 게 있는데 “그만 미안해하기”이다.

나 또한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미안한 마음과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와서 부딪혀도 미안하다고 하고 내 의견을 말할 때도 미안하다 하고 다른 사람이 말을 잘 못해서 못알아 들었을 때도 미안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하지 않아 미안하고 내가 행복하려고 엄마가 바라는 대로 살지 않아서 미안하다 한다. 왜 그렇게 미안해야 되는 게 많은 건지.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나이기 때문에도 미안하다 하고 미안해야 되는 게 너무나 많았었다.

그래서 올해 신년 계획은 미안하다는 하는 말은 줄이고 대신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것보다는 ‘들어주어 고맙다.’ ‘유감스러운 말을 들어 미안하다’는 것보다는 ‘유감스러운 말을 나에게 말해주어 고맙다.’ ‘엄마 내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아서 미안해’보다는 ‘엄마 다른 사람 말 듣지 않고 내가 내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혼자서도 찾을 수 있도록 잘 키워줘서 고마워.’하지만 1년 내내 노력해봤지만 미안해 하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미 너무 오랫동안 미안해야 한다고 배웠고 이미 너무 오랫동안 미안하다고 해왔기 때문인지 아무리 마음을 강하게 먹고 미안한 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꾸려고 해도 나는 아직도 미안하다는 말을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달고 산다.

무슨 말을 꺼내기 전 움츠려들어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라고 말을 하게 되고 무리한 부탁을 받아 내가 정말 시간이 없어 들어주지 못해도 미안하고 아직 엄마에게 미안하다.

아직도 오랫동안 미안함을 배운 나는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더 노력해야 내가 잘못하지 않은 내 자신에게 그만 미안해 하고 내 곁에서 나와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감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수희(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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