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nglish for the Soul] Epiphany / 에피퍼니

2016-12-23 (금) 03:43:10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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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흔히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요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야말로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깨닫지 못하면 제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죠. 불교의 깨달음이 자기 마음 자리 보아 건성(見性)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깨달음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곧 하나님!”이란 걸 깨우치는 것.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연말연시 들뜬 기분과는 별도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깨달음을 다지고 새깁니다. Jesus is the Christ! 흔히 '예수 그리스도'라 칭하는 표현, 그 안에 사실 대단한 깨달음이 들어 있답니다 --- ‘는’이란 한 글자가 더 들어있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란 즉 “예수는 그리스도!”란 문장의 축약!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으로 떠난 제자들 졸업 수학여행 길. 예수님께서 친히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이르되, "세례요한이라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마태 16:16]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최인호 작가께서 가톨릭 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펴낸 책 제목이기도 했던가요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But whom say ye that I am? 이 질문의 핵심은 '그러나[But]'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든, 이제껏 나를 따르며 배워 온 '너희는[ye]' '나를 누구라' 하느냐? 냉큼 정답을 내어 놓으라는 엄명! 여태껏 나를 따르며 아주 가까이에서 배운 '너희[thou 의 복수형 ye]'는 과연 나를 누구라 하느냐?

평소 그리 침착한 축에 끼지 못하는 베드로[Peter], 역시 참을 수 없다는 듯 불쑥 짧게 답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평소 남달리 논리정연한 편은 아닌 베드로, 오늘따라 왠지 수제자답게 한 문장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요점 정리하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시던가요? 그래, 잘 맞추었다, 과연 너는 똑똑한 내 수제자 베드로니라. 그러시던가요? 아니올시다. 마치 동문서답하듯 엉뚱한 찬사(?)를 하시네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똑똑하다는 칭찬 대신에 복이 있도다 하시네요. "Blessed art thou, Simon Barjona."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복되도다. 왜냐하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게 한 건, 육신의 시몬이 아니라 하느님 아빠[Abba]께서 영감을 주신 때문이란다.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오랫동안 수도 끝에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견성 체험이 오듯, 늘 깨어 있으며 간구하는 크리스천의 삶에도 어느 순간 '홀연' 깨달음이 있답니다.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 함께 선을 이루는 걸 '줄탁동시'라 하지요. 문득,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곧 하나님!" 이라는 깨달음이 체화(體化)되는 경험, 그 순간을 '에피퍼니'[epiphany]라 합니다. 직관과 영감으로 ‘문득’ 그저 알게 되는 깊은 깨달음을 말하죠.

매년 기리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베드로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새기는 겁니다.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따로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을 기릴 필요도 없습니다. '주현(主顯)'이 내 안에서 벌어지는 것, 그걸 '에피퍼니'[epiphany]라 하지요. 얼핏보면 '홀연' 일어나는 것 같은 '에피퍼니' --- 미상불,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에피~!퍼니'입니다. Merry Christmas!Shalom!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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