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130) 진보와 개혁의 시대②

2016-11-11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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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자들의 끈질긴 개혁운동에 꾸준히 저항해오던 세력들이 있었다. 정치 boss들 과 기존제도의 특혜를 받아오고 있던 사람이나 단체들이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개혁 반동 세력들의 힘을 꺾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진보주의자들은 만일 “주민의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개혁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투표로 직접 개혁을 하도록 할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개혁을 못 하게하는 제1차적인 장벽은 공직자들의 선거에서의 “반 공개적” 투표방법이었다.

1800년대말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주들에서는 각 정당이 공급하는 유색투표 용지들을 사용해서 투표를 하였었다. 예를들어 민주당은 노란색, 공화당은 파란색등으로 자당의 후보자 이름만 적힌 투표용지를 투표자에게 주면 투표자는 자기가 원하는 색갈의 투표 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방법이었는데 이 방법을 쓰면 투표자가 누구에게 투표를 하는지를 쉽게 알수있는 것으로써 실질적인 공개투표나 마찬가지이었다. 누가 누구인지를 서로 다 아는 투표장에서 정치 boss 가 투표를 사실상 감시하여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질 수 없는 투표방법이었다. 1888년에 Massachusetts 주가 최초로 유색투표 용지사용을 금지 하였다. 이제는 최소한 투표의 자유는 보장되게 되었으며 딴 주들도 이 제도를 채택하기 시작하였 었다.


그러나 투표의 자유만으로 공정한 선거가 치루워 지는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정당 공천은 하향제로써 주민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 없이 정치 boss가 지명하는 사람이 정당 의 후보가 되는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한국에서는 오늘날 까지도 하향식 공천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독재와 정치혼란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정당공천을 주민의 직접투표 (Primary) 로 결정하는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였다.

1902년에 Mississippi 주가 처음으로, 1903년에 Wisconsin 주가 두번째로 주민직접공천 제도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 주민직접공천제도를 피하기위해서 남부 몇 개 주의 민주당에서는 민주당은 회원자격이 백인에 국한된 “private club” 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흑인들의 참여를 오래 거절해 오다가 오랜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그와같은 관행이 금지되었다.

미국은 건국이후 20세기에 들어와서 까지도 연방상원 의원들을 각주의 하원에서 선출 하였었다. 따라서 연방상원 의원은 주민들 보다는 주의 하원이 상전이었고 각 주의 정치 boss 들이 연방상원 의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이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와같은 연방상원 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해 보고자 계속 노력하였으나 “the rich men’s club” 이라고 비꼬아서 불리는 연방상원은 번번히 이와같은 개혁을 부결해 왔다.

드디어 1904년에 Oregon 주가 주민들이 연방상원 의원 “후보”들을 일차로 선출 하도록한후 주하원이 후보들 중에서 한명을 선출하도록 하는 제도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1910년에 이르러 많은 주들이 연방상원의원 선출방법을 개정하자 연방상원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동의 하여 1913년에 연방헌법 개정 제17안으로 연방상원 의원들이 주민의 직접투표로 선출 되는 제도가 채택 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이 일부 주들에서 관철시킨 중요한 제도들이 몇가지 더 있었다. 첫째로는 “주민법률발의권” (Initiative) 인데 이제도는 만일 주민 5% 내지 8% 가 발의하는 법률안은 주민투표로 입법이 될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써 어떤 주에서는 주민발의입법안 을 주의회가 어느 기간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주민투표로 입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써 1898년에 South Dakota 주가 최초로 이제도를 채택 하였는데 그후 20여개주가 이제도를 뒤따라 채택하였다.

또 하나의 개혁제도중에는 “주민소환제도” (Recall) 가 있는데 12여개의 주들과 수많 은 도시에서 채택한 것이다. “부적절한” 선거직 공무원을 임기중 아무때고 주민들이 청원 으로 “소환”하면 그 공무원은 “신임투표”를 통과 해야만 존속할 수 있는 제도이다.

Wisconsin 주의 공화당 Scot Walker 주지사는 취임한지 2년후인 2012년에 recall 되었었 으나 미국 주지사중 최초로 소환투표가 부결되어 기고만장해 졌다가 그 2년후에 재선된 일이 있었다. 한국 헌법에도 한때에는 “국민입법발의권” 과 “국민소환” 제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으시리라고 생각한다.


개혁주의자들이 추진한 또 하나의 “개혁”이 여성 투표권이다. 개혁주의자들은 여성 들이 개혁을 더 많이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었다는데 미국에서 1896년에야 서부의 4개주 가 처음으로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다는 사실이 얼른 믿어지지 않는 얘기이다. 그후 1910년과 1914년 사이에 Mississippi 강 서쪽에 있었던 여러개의 주들이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는데 그 100여년 후인11월8일의 선거에서 까딱 잘했으면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뽑았을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무렵에 개혁주의 성향의 언론인, 소설가, 화가등의 활동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들은 정부, 금융투자, 노동조합, 대재벌 등 곳곳을 샅샅이 들추며 부패와 범죄를 폭로 하는 글들을 썼다. 부정이 발견되면 매서운 글로 고발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더러는 사실이 아닌 글까지 썼다는 의심까지 받았을 정도이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글을 쓰던 사람들을 “Muckrakers” 라는 별명으로 호칭했다고 한다.

Muckraker 의 효시는 St. Louis시의 젊은 심층추적 기자이었던 Lincoln Steffens 의 잡지에 연재된 시정부의 부패에 관한 용감한 연속기사였다고 하는데, 그 기사들은 1904년 에 “The Shame of the Cities” 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Steffens 의 책은 개혁론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서 그책이 출간된 후 6년이 다 되기 전에 Philadelphia, Chicago, Kansas City, Minneapolis, Los Angeles, San Francisco 등의 도시에서 시정치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

Ida Tarbell 은 석유산업의 독점기업 Standard Oil 의 악랄한 독점재벌 성장과정을 5년간 심층조사하여 “일반기업체가 아닌 공적 제1호 Standard Oil” 이라는 책자를 써내서 Standard Oil 의 기업 독점과 횡포를 폭로하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Rockefeller 에게 사업을 탈취당하고 그의 동업자는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게되자 Tarbell 은 이소설을 써서 미국 독점기업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Frank Norris 는 1901년에 California 를 문어발처럼 옭아매는 철도회사의 독점을 “The Octopus: A Story of California”라는 책을 써서 폭로하였고 1903년에는 Chicago 의 Wheat Exchange(곡물거래소) 의 부조리를 “The Epic of the Wheat” 라는 책으로 폭로하였다.

Theodore Dreiser 는 “The Financier” (1912), “The Titan” (1914), ”An American Tragedy” (1925) 등의 책을 썼는데 그책들은 부의 도덕, 권력, 성공, 빈곤등을 소재로한 사회 비판적 소설들이 었다고 한다. 당시의 유명한 화가들도 도시의 빈곤, 빈민가등을 적나라하게 그렸고 그런 그림들이 화랑에서 고가로 판매되었다. 당시의 사진작가들도 쓰레기로 가득찬 빈민가에서 굶주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참상을 찍어서 발표하였다.

사회사업가, 사회학자, 역사가 들도 청소년 노동의 진상, 부자들 축재과정의 만행, 인종차별등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들을 썼다. Burton J. Hendrick 은 ”The Story of Life Insurance” (1907) 라는 생명보험의 부조리에 대한 폭로성 책자를 써서 뉴욕에 있는 거대 생명보험회사들을 통제하는 법률들이 입법되도록 하였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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