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가씨’

2016-10-21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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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가 판을 치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세계적 오퇴르 박찬욱 감독의 레즈비언 에로틱 스릴러 ‘아가씨’(The Handmaiden-★★★★-5개 만점·사진)는 발가벗은 욕정과 선혈이 흥건한 범죄영화로 본질은 러브 스토리다. 원작은 웨일즈의 여류작가 새라 워터즈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로맨스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

무대를 1930년대 일제치하 한국으로 옮긴 ‘아가씨’의 주요 인물은 4명. 친일파로 일본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음란서적 수집가인 변태적 인간 코주키(조진웅)와 자신의 후견인인 코주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대저택(오사카서 촬영)에 갇혀 사는 히데코(김민희). 그리고 히데코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그를 사랑으로 유혹하는 날사기꾼 백작(하정우)과 백작의 사주를 받고 히데코의 하녀로 들어간 소매치기 숙희(김태리).

누가 누구를 속이고 속는지 모를 만큼 얘기가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는데 히데코와 숙희가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흥미진진한 얘기가 점입가경에 이른다. 장르감독인 박찬욱의 뛰어난 솜씨가 뽐을 내는데 구도와 색깔과 촬영 및 프로덕션 디자인(올 칸영화제서 벌칸상 수상) 등 외형미가 완벽하고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김태리의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당돌한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물론 박찬욱의 영화여서 피가 흐르는 잔인성을 목격하게 되는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처럼 손가락이 싹독 싹독 잘려나간다. 이와 함께 히데코와 숙희의 전라의 격렬한 성애장면이 장시간 계속되는데 이 장면은 프랑스 영화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의 레즈비언 섹스신 다음 갈만하게 극사실적이다. 그런데 음악이 BBC-TV의 드라마 ‘다운턴 애비’의 것을 똑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적 깊이나 투철한 예술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박감독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왜 그가 장르감독의 틀을 벗어나 그 재주로 예술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하고 궁금히 여긴다. 그는 언젠가 내게 말했듯이 자기가 깊은 영향을 받은 장르감독 히치콕의 길을 고수하려는 것인가.

얼마 전 영화 홍보차 LA에 온 박감독과 김태리를 만났다. 그는 시대를 1930년대로 잡은 것에 대해 “귀족 아가씨와 하녀라는 신분제도와 정신병원이라는 근대기관이 공존하는 시기가 그 때였기 때문이다”면서 “이와 함께 한반도의 근대성과 친일파들의 내면도 탐구할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태리에 대해 “1,500명에 육박하는 배우들을 오디션 했으나 내가 생각하는 숙희를 찾지 못했다”면서 “거의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마지막 한 명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김태리였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해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내가 김태리에게 “러브신 연기하기가 힘들었겠는데 참 용감한 연기”라고 말하자 태리는 “하기 힘들었어요”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왜 한국어 제목은 ‘아가씨’인데 영어 제목은 하녀를 뜻하는 ‘핸드메이든’이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두 여성 주인공이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다. 원제가 숙희를 가리키는 ‘핑거스미스’(소매치기)이니까 한국어 제목은 히데코가 주인공인 것처럼 ‘아가씨’ 그리고 영어 제목은 다시 ‘핸드메이든’으로 정했다”고 대답했다. 불어 제목은 ‘마드므와젤’이라고.

다소 길다고 느낀 동성애 장면에 대해서는 “애초에 우려했던 만큼 동성애 혐오자들이 준동하지는 않았다. 댓글을 악의적으로 달고 별점을 0으로 주어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 반응이 뜨거웠다. 무턱대고 혐오하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자연스럽고 아름답더라’고 말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430만명이 관람하며 히트를 했다.

앞으로 구상 중인 영화에 대해서는 한국어, 영어 영화 여러 편이 기획 가동 중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데 박 감독의 한 측근은 내게 네트플릭스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해 줬다.


박 감독은 지난 2013년 히치콕 스타일의 ‘스토커’(Stoker)로 할리웃에 데뷔했다. 박 감독은 이어 자신의 예술관과 영화관에 관해 “말로 설명할 만한 것은 없다”면서 “그때 그때 좋게 느껴지는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쓸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어 “꼭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야 하느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코주키에게 그의 장서와 서화 컬렉션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다면 그것이 파괴되었을 때 그의 분노도 짐작이 갈 것이다.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최소한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은 ‘아가씨’를 제치고 한국에서 김지운 감독의 ‘밀정’(The Age of Shadows-현재 CGV서 상영)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올린 것에 대해 박 감독의 한 측근은 “그것은 늘 있는 한국의 정치적 성향 탓이라고 말했다. ‘아가씨’는 코리아타운 내 CGV, 아크라이트(바인과 선셋),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에서 상영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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