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신작 시집 ‘초혼’을 펴낸 고은 시인. “가끔은 들판, 가끔은 종이 위를 돌아다니며” 시를 썼다고 시인은 적었다 [이영균 제공]
“전에 나는 ‘민족시인’이다, ‘국민시인’이다 이런 소릴 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경계를 허물고 싶어요. 다른 것과 만나 지구의 모든 곳에 내 언어가 가있는 꿈, 모국어의 행복과 함께 다른 언어로 나아가는 꿈을 갖고 있어요.”경기 수원 광교산 자락에 있는 자택에서 머물고 있는 고은(83) 시인은 자신의 문학 지향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지난달 30일 새 시집 ‘초혼’을 출간했다. 전작 ‘무제시편’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시집이다
‘무제시편’은 그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체류할 때 머릿속에 샘솟는 시상을 제목 없는 시 500여 편으로 쏟아낸 것이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인 세계와 우주, 인간 존재에 대한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광교산 자락의 자택에 머물며 쓴 이번 시집은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대로 투영된 시들이 많다.
특히 2부에 통째로 담긴 60여 쪽 분량의 대서사시 ‘초혼’은 김소월의 시 ‘초혼’ 일부를 인용해 한반도 땅 곳곳을 훑어가며 역사의 비극으로 죽은 수많은 원혼을 부르고 달래는 ‘굿 시’이다. 제주 4·3, 한국전쟁, 노근리 양민학살, 광주 5·18, 세월호까지 참사의 현장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들을 부른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청소년 때부터 한국전쟁을 겪고 최근에 세월호까지 수많은 죽음을 봤습니다. 우리 땅은 금수강산이기도 하지만, 이런 원혼이 가득 찬 죽음의 땅이에요. 이 땅에 대한 제례가 없이는 우리의 존재 의미가 없지요. 내 또래가 6·25 때 절반이 죽었는데, 그들은 죽고 나는 살아남았으니 가책이 좀 있어요. 그들이 못 산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줘야 하는 과제도 있고. 그래서 그 죽음을 애도하는 사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시인은 산 자들을 위해 사랑을 노래하고 불의를 저주하는 ‘예언자’로서의 과제도 있지만, 과거에 축적된 죽음을 애도하는 ‘사제’로서의 과제도 있습니다. 초혼으로 죽은 자를 초청해 산 자와 같은 공간에서 만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시인의 상상으로서만 가능하죠. 그들이 피 흘리기 전, 죽기 전 삶으로 돌아가서 있게 하고 싶었어요.”이번 시집에는 또 그가 오래 천착해온 불교의 선 사상과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기원을 담은 ‘행복이여 호젓하여라’, ‘노래하노니’ 같은 시들도 있다.
“내 쉬지 않는 핏줄로 피로 노래하노니/제발/나의 행복이/소말리아의 불행이 아니기를/나의 행복이/캄보디아의 행복을 빼앗아온 것이 아니기를/또는 이웃 나라의 행복이/우리나라의 불행이 아니기를//바람 부는 날/내 발등과 손바닥으로 노래하노니/모든 압승(壓勝)이여 폭리(暴利)여/모든 참패(慘敗)여 절량(絶糧)이여/가라//불행이여 가라 함께 행복이여 너도 가라” (‘노래하노니’ 전문)그는 이번 시집을 “특수와 보편을 합치시키는 과제”를 생각하며 3년 동안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경작해 수확한 열매라고 소개했다.
“모든 보편은 최초에 특수성에서 비롯돼요. 서구가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우리가 모르는 것일 때는 특수성이죠. 모든 특수성은 보편성으로 가는 흐름에 있고, 보편성은 수많은 특수성이 함께 만든 합창이에요. 라틴아메리카의 진실 없이 서구의 진실만 진실입니까? 동북아시아의 고민과 어둠 없이 어떻게 다른 곳의 광명만 광명이겠어요? 특수성은 늘 보편성을 갈망하고, 보편성은 늘 특수성을 흡인하고…세계가 하나의 큰 기류, 에너지로 순환하는 것이지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고, 내 시도 거기에 있습니다.”그는 이미 자신의 시가 한국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다른 언어로 태어나 사람들의 마음에 닿은 사실을 알게되면서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작년에 포르투갈의 한 시인이 내 시를 어디서 봤는지 자신의 시집 속에 한 마디 쓰겠다고 허락해달라고 편지가 왔어요. 또 이탈리아와 경계에 있는 스위스 엥가딘이라는 지역에서 단 2만 명이 옛 로마어를 쓰는데, 거기 사는 한 시인이 내 시를 자신의 시집에 번역해 올리고 싶다고 편지가 왔어요. 이런 편지가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독일 등 여러 곳에서 계속 옵니다. 그러니 내가 이제 한국의 시인만은 아니지요. 어쩔 수 없이 나는 세계 지향을 해야 해요.”그러나 그는 한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국문학 전체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냥 한 명의 시인이고 시의 행위를 지구를 순회하면서 하는 것뿐이에요. 다행히 나를 사방에서 오라고 하니까 가는 것이지. 나는 한국문학을 걱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와 전혀 다른 문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랏빛도 있고 분홍빛도 있고 배추색깔도 있고 다 나름대로 있어야지. 이 세상의 모든 색깔이 어우러지는 조화의 장이 내가 바라는 거예요. 그 일부에 내가 보태는 거지. 내가 이끌어간다 이런 건 아주 사절이야. 문학으로서는 모두 개인일 뿐이에요.”그는 한국 시의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자기라는 골짜기, 감옥에 갇혀 있다는 얘기들도 많이 하는데, 나는 그런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언제 우리가 그렇게 자기 안에 빠져봤나? 그러다 나중에 변곡점이 생기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내가 전에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시 ‘순간의 꽃’)라고 썼잖아요. 누구에게나 늘 골짜기가 있어요. 벌판에만 있을 수도 없고. 누에고치처럼 싸고 있어야 나중에 나비가 되는 거니까 한동안 거기 갇혀 있는 건 좋아요. 그러다 벗고 나오는 거지.”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다시 거명되는데 대해서도 그는 손사래를 쳤다.
“모르는 사람한테 왜 질문을 합니까? 상 얘기는 하지 맙시다.”그는 앞으로 5∼6개의 큰 주제를 시로 쓰는 게 여생의 과제라고 했다.
“지금 쓰고 있는 건 단테의 ‘신곡’처럼 천국도 나오고 이 세상도 나오는 긴 서사시예요. 아직도 쓸 게 많아. 아내(이상화 중앙대 명예교수) 얘기를 담은 연애시 ‘상화 시편’ 2권, 국토에 대한 긴 시 ‘운명’. 이런 대여섯 가지가 앞으로 여생에 남아있는 일이에요. 이거 다 쓰면 죽어도 괜찮아.(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