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웃픈 기억들
2016-10-06 (목) 05:36:39
강순애
아침부터 이 노래가 입가를 맴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나알리더라~~~’ 나만 그런가? 아침에 어느 한 노래가 입가에 맴돌면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이 노래는 돌아가신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르니 엄마와의 아련한 기억들이 아물아물 피어 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된다. 빈혈이 있었던 나는 아침 조회를 하던 중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고 아무 정신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은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업고 집에 가서 아랫목에 눕혔다. 그리곤 새로 지은 흰쌀밥에 생 계란을 넣고 마가린에 간장을 넣어 비벼 주셨다. 어찌나 고소하고 맛이 있었던지...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종종 금방 지은 밥에 계란후라이, 참기름, 간장을 넣고 비벼 주곤 했다. ‘외할머니가 엄마 어렸을때 이렇게 만들어 주셨었어’라며 아이들에게 해 주었다.
4남매 중 맏이였던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많이 도와 주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에는 엄마와 이불빨래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불호청을 뜯어 빨래해 말려서 풀을 먹이고 또 말려서 시침질하던 기억들, 유독 아버지가 풀을 먹인 빠닥빠닥한 이불을 좋아하셔서 친정엄마와 나는 2인1조 선수처럼 이불을 꿰매곤 했다.
가끔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엄마가 이불호청을 뜯을 때는 아빠도 남들처럼 편하게 빨래할 수 있는 지퍼 달린 이불 좀 덮으시지 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표현도 못하고 엄마를 도와드렸다. 내가 이러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나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을까 해서 물어보았다.
큰 딸애는 내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다리 마사지 해주고 키 크라고 다리를 쭉쭉 늘려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둘째는 잘 때 늘 틀어주었던 클래식 음악이 가끔 무서웠었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이런 기억들을 우리 아이들이 간직하고 있었구나. 한참이 지난 어느날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도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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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