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미국역사(122) 계속되는 경기불항으로 임기내내 고전하는 Cleveland 대통령

2016-09-16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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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on 공화당정부의 실정으로 이미 시작된 미국사상 초유의 불경기는 민주당의 Cleveland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회복되지 않고 임기내내 그를 고전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미국의 경제를 괴롭혀 오고있던 독점기업, 관세제도, 금본위 화폐제도, 무절제한 은화발행, 농산업의 빈곤, 노동착취와 그에 따른 노동쟁의 활성화 등등 복합적인 요인들로 헝클어진 실타래 같이된 미국의 경제는 사실상 집권중인 한 대통령이 한첩으로 병을 근치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었다. 첫 번 대통령임기 때에 정치가 순조로워서 ‘명관이란 소리를 들었던 구관’ Cleveland 도 병의 예방 보다는 이미 곪은 상처를 치료해 보려고 뛰어 다니다가 임기를 끝내고 말았다.

Cleveland 는 첫 번 임기때 너무 극성맞은 국회의 무리한 입법들을 연속된 veto 로써 수위조절을 한 자린고비식의 소극적인 정치를 해서 적당한 균형을 잡는 성과를 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 때에는 당면한 문제들의 심각성 때문에 적극적인 정책 으로 대처해 보고자 하였으나 성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Cleveland 대통령이 취임즉시 당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는 재무성의 금재고가
위험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점이다. 금본위화폐제도에서 종이돈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연방정부가 아무 때고 지폐의 소지자가 요구하면 약속된 양의 금과 바꾸어 준다는 연방정부의 약속이다. 아무리 연방정부의 약속이지만 약속은 현물인 금을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 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민들은 연방재무성이 발행된 지폐에 합당한 금재고량을 항상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했던 까닭에 만일 헛소문으로라도 재무성의 금 재고량이 모자란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도나도 먼저 지폐를 금으로 전액 바꾸어 두려고 은행에 몰려들게 되어서 헛소문이 진소문으로 되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미국의 금본위제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무절제적인 은화발행” (Free Silver) 이었다. 은 생산주들의 주장으로 생겨난 은화발행법에 따라 당시에 매년 5천만 달러의 지폐를 새로 찍어내어 그돈으로 은을 구입해서 새 은화를 주조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통화증액은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었다. 종이돈 가치의 종국적인 하락을 거의 본능적으로 감지한 미국민들 중에는 지폐를 금으로 바꾸어 ‘금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와 같은 현상이 꾸준히 계속되자 드디어 연방재무성의 금재고가 위험수준 으로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Cleveland 대통령은 취임하던 해인 1893년 8월에 국회를 특별소집하여 기존의 은화발행법을 폐기시킬 것을 요구하였고 국회는 오랜 설전 끝에 그법을 폐기시켰다. 재무성 금 재고의 동액, 동시적인 증가가 없이 지폐만 찍어냈던 관행이 중지되어 금유출을 지연시키는 데에는 다소 도움이 되었으나, 이미 시중에는 금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기왕에 발행된 Gold Certificate 라는 지폐가 계속 많이 나돌고 있어서 불안한 상태이었다.

국채를 발행하여 금을 사들이기도 했으나 그런 방법은 임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였고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미국 지폐의 신뢰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드디어 Cleveland 대통령은 당시 Wall Street 를 거의 독점적으로 주물르고 있던 금융투자가 J. P. Morgan 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 Morgan 은 금융투자가 들을 동원하여 미국국채 6천5백만 달러어치를 유럽에다가 팔아서 그 액수의 금을 유럽에서 사가지고 돌아와 재무성의 금보유재고를 대폭으로 늘렸었다. Morgan 은 당연히 거액의 커미션을 벌었지만 Populist 당원, 농산업자들과 은광업자들은 Cleveland 가 독점금융 재벌들과 ”손을 잡았다”고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Cleveland 대통령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요인이 되는 고율의 수입관세를 반대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는 관세를 내리기 위해서 기존의 관세법을 개정하도록 국회에 요청하였 으나 새로 제정된 관세법은 그전의 법과 대동소이한 것으로서 그를 실망시켰다. 다만 새 관세법에는 연소득이 4천 달러가 넘는 납세자들에게 초과분에 대해서 2%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규정이 들어있어서 그는 대통령의 서명이 없이 새 관세법을 입법시켰다.


그러나 이 새 관세법에 반대하는 재판이 곧 시작되었고 대법원은 5대4로 이 소득세가 위헌이라고 판결하여 집행되지 못하였다. 미국의 소득세 제도는 1913년에 헌법 제16개정이 통과됨으로써 처음 시작되었다.

계속되는Depression으로 수백만 명의 실직자들이 속출하였고 1894년 겨울에는 혹한이 와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였다. 4월에는 500여 명의 실직자들이 오하이오 에서 워싱턴까지 항의 도보시위를 하였으며, 5월에는 시카고 외곽에서 객차 제조회사인 Pullman 회사의 종업원들이 강경파업을 계속하자 연방군이 동원되어 파업을 진압하였다.

이때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가 일어났다. 거의 모든 미국사람들은 Sherman Antitrust Act 가 독점기업의 단속을 위해서만 입법된 것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연방법원이 노동자들이 강경파업을 하여 기업활동을 방해함으로써 Antitrust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결하면서 파업중지명령 (injunction) 을 내렸다. 파업을 계속하면 위법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Antitrust 법은 양면의 칼날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 대기업들이 파업중지를 시키는 수단으로도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Cleveland 대통령은 정부정책으로 Depression 을 중지시키는데 실패하였고 그 결과로 1894년 가을에 있었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Populist 당의 의석이 늘어났으며 공화당은 하원의 소수정당에서 민주당보다 141석이나 의석이 더 많은 다수당이 되었고 상원도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1896년의 대통령선거가 다가올때 쯤에는 민주당은 국민들의 인기를 많이 잃어가고 있었고 Cleveland 대통령은 당내의 지지가 많이 떨어져서 재선출마를 생각해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와 같은 사회과학에도 자연과학과 동일한 철칙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보고 현재를 분석하며 곧 다가올 미래도 예측해서 과거에 저질렀던 것과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인간들의 역사를 보면 거의 희극적인 일이라고 해야만할 정도로 인간들은 같은 잘못을 계속해서 반복해오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라는 큰 코끼리가 큰코, 상아, 앞다리 큰 배, 뒷다리, 큰 몸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꼬리 등으로 구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장님 코끼리 만져 보기’식으로 자기가 만져본 부분만이 코끼리라고 서로 한치의 양보 없이 끝없는 논쟁을 하기 일수이다.

미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몰이해 와 화폐제도에 대한 편견으로 국력이 낭비되고 혼란이 지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미국사람 들은 “금과 은, 지폐와 통화량” 이라는 묘약으로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화를 계속 믿고 있었다. 잘못된 종교가 세상을 현혹시킨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마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현혹되기를 원하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사람은 생겨먹은 만큼 대접을 받는다” 라는 얘기가 있다.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독재정치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는 독재정치가 계속 판을 치고 있으니 인간의 근본속성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미국민들이 국가경제의묘약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 에 나오는 ‘가짜명의’가 사랑의 묘약으로 한탕했던 것처럼 자기가 명약을 가지고 있노라고 나서는 명의 같은 정치인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막상 마시고‘사랑의 묘약’이란 것이 값싼 포도주에 지나지 않았지만. 1896년의 미국 대통령선거에 얼른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기에 고추가루 많이 풀어넣은 콩나물국’ 식으로 혼돈된 국가경제라는 감기에 ‘금, 은, 화폐정책’이라는 똑같은 퀘퀘묵은 비방약을 들고 양당의 명의들이 등장했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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