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내리사랑

2016-09-15 (목) 01:57:30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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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나의 보석상자에는 아주 조그마한 보석 하나가 있었다. 크지도 않은 그 보석은 언젠가부터 내 행복을 좌지우지했다. 해가 나면 너무나 맑아 눈이 부셨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는 흐린 날에는 그 영롱한 빛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단단한 보석임에도 불구하고 깨질까 부서질까 노심초사하면서 지켜보았다.

어느덧 점점 커진 보석은 상자 밖에 있었다. 상자 밖에서 스스로의 빛을 발하기 위한 것이다. 보석은 처음 상자 밖의 환경에 잘 적응이 안되어서 힘들었지만 차차 적응하여 아주 편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또 자꾸 커져 마침내는 커다란 날개를 펴고 다른 보석상자를 만들기 위하여 훨훨 날았다.

큰 날갯짓을 하며 그 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지나간 나의 젊은 시절 나만의 보석상자를 만들기 위한 시간들이 기억났다. 소중하게 간직된 그 시간들을 떠올리니 두 날갯짓의 모양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한가지 변함이 없는 사실은 내리사랑을 증명하듯 나의 조그마한 보석에 대한 사랑이다.


내리사랑… 소중한 보석인 딸 아이의 혼사를 치르면서 나도 다시 그 사랑의 의미를 느꼈다.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았지만 멀리 떨어져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면서 같이 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오빠가 이번 일을 두고 먼 길을 마다 않고 오셔서 보여주신 사랑 덕분이다. 며칠 전 혼사를 치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느라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는 부엌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다.

부엌에 가보니 오빠가 부엌에서 왔다갔다 하시면서 무엇인가 고민을 하는 모습으로 계셨다. 나는 깜짝 놀라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오빠는 내 질문에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시면서 동동거리는 내가 안쓰러워서 자신이 필요한 부엌일을 해보려 그러신다고 했다. 하나 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지쳐 자는 모습을 보며 단잠을 지켜주고 싶다는 오빠의 마음이 보였다.

하염 없이 주고 싶어 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오빠는 항상 주기만 하고 나는 받는 것에만 익숙하여 있었기에 지친 내 모습이 더욱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아니면 철없는 누이동생으로 보이던 내가 자신의 보석상자를 잘 지켜내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보셨을지도 모른다.

오빠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나이 든 오라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는 누이동생이 되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내리사랑…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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