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5년 사업의 결실 커뮤니티 나눔 보람”

2016-08-26 (금) 하은선 기자
작게 크게

▶ 아주부동산 샘 정 대표

▶ 한미박물관 건립에 10만달러 쾌척 “이민역사 동참 뜻 깊은 일”

“35년 사업의 결실 커뮤니티 나눔 보람”

‘아주부동산’ 샘 정 회장은 “앞으로 건립될 한미박물관을 통해 한인 후세들이 자긍심으로 갖고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상혁 기자>

“한미박물관 건립에 동참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아주부동산 샘 정(61) 회장이 한미박물관(KANM•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 건립기금으로 10만달러를 기부했다. 정 회장은 한인사회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늘 꿈꾸던 일이었는데 한인 이민역사의 뜻 깊은 이정표가 될 KANM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며 쑥스러워했다.

1981년 LA 한인타운에 ‘아주부동산’(A-ju Realty, Inc) 간판을 내걸고 부동산업에 뛰어든 정 회장은 수익성 부동산 투자관리 서비스를 특화시킨 장본인이다.


그 무엇보다 신의를 앞세우는 부동산 사업가로 오늘의 성공을 이룬 정 회장을 지난 25일 아주부동산 사옥에서 만났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다가 거듭된 요청에 만남에 응한 정 회장은 “기부를 결정한 지는 꽤 되었는데 기부금액을 두고 고민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며 “지금의 내 마음에 맞게 모자라지도 넘치치도 않은 기부금을 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 한인타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한지 35년이다.
▲혈기 넘치던 24세에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회사에 들어갔다. 그냥 부딪치고 깨지면서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더니 1년 만에 탑에이전트가 되었다. 첫 딜(중개매물)이 6유닛짜리 아파트였다. 작고하신 아버지(정상호씨)의 소개였는데 매입조건으로 관리를 부탁했다. 멋 모르고 패기 하나로 딜을 성사시켰고 이후로 부동산 중개와 투자관리를 병행하고 있다. 매매 거래가 수익이 크지만 관리 서비스는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한다.

-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을 알고 싶다.
▲어려서부터 독립심과 신용을 중시하며 살았다. 이북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장사꾼이었던 아버지(고 정상호씨)의 영향이 크다. 부동산 중개는 주택, 사업체, 수익성 투자건물로 나뉘는데 내 경우는 아버지 덕분에 수익성 투자건물 중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로 한미박물관 10만달러 기부도 아버지 유산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내놓은 것이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면 렌트비가 없어 돈을 빌리러 다닐 때조차 한 푼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자양분이 되었다.

- ‘아주부동산’하면 6가와 킹슬리의 주택 같은 사옥을 떠올리게 되는데
▲같은 장소에 단독건물을 유지한 것이 굴곡이 심한 부동산 업계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다. 지금 이 사옥은 1985년 렌트를 얻어 들어왔다가 아예 매입을 해버렸다. 그 당시 한인 사업체들은 올림픽가에 몰려 있었고, 6가에 들어선 한인 비즈니스는 ‘아주부동산’이 처음이었다. 한인상권의 6가 진출에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이후는 미련하게 버텼다. LA 폭동, 노스리지 지진, 부동산 버블 붕괴 등을 겪으면서 파산위기도 있었고 바로 이 자리에서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으려 애쓰며 견뎠다. 이 사옥은 어떤 어려움에도 꿋꿋히 버티게 해준, 그런 곳이다.

- 10년 이상 근속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들었다.
▲20년 이상 함께 일하는 직원도 있다. 인복이 많은 편이다. 유독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회사에 찾아온다고 해야 할까. 사업 전성기에는 본사와 3개 지점에 60명의 직원들이 있었는데 현재는 나를 포함해 에이전트 2명과 관리 직원 6명, 아주 프라퍼티 매니지먼트 직원 3명이 전부다. 원래 부동산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개인 사업체가 가능해 거쳐 가는 직원들이 많은데 아주부동산은 건물관리(property management)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격적으로 재정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대우하고 커미션, 보너스 등으로 건물관리하는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니 모두들 자기 사업하듯 일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지
▲올해 61세인데 내 모습이 계획한 대로 되어 기쁘다. 작고하신 아버지께서 늙을수록 빚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이라 45세가 되었을 때 앞으로의 15년을 계획했다. 투자자금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사는 집, 일하는 사옥의 융자는 환갑이 되기 전에 갚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지금 원하는 대로 여유가 생겨 꿈꾸던 기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은선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