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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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119) Grover Cleveland 대통령과 독점기업 단속시작

2016-08-26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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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Chester A. Arthur 대통령은 직업공무원제도 추진등 몇가지의 치적이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원래 당내기반이 약했던 탓에 1884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당내의 명 연설가, 전략가이었던 전 메인 주의 연방상원의원 James G. Blaine 에게 공화당 대통령후보 공천을 빼앗기고 만다. Blaine 은 전에도 몇 번 대통령 후보공천에 도전했던 사람이었는데 엽관제도를 지지해오는 등 보수적인 정치인이었고 당내에서도 적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정치 개혁을 바라는 당시 미국 국민의 정서에도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민주당은 오래간 만에 정권을 쟁취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가 익어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정치개혁의 선봉장으로 명성이 난 신임 Grover Cleveland 뉴욕주지사를 1883년에 대통령후보로 공천하였다. 가난한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Cleveland 는 작은 목사관에서 성장하면서 정직, 근면, 책임봉사, 준법등의 덕목을 몸에 익혀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성격이 유쾌한 사람으로 먹고 마시기도 좋아해서 체중이 250 파운드 나 되었는데, 대학은 가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검사와 시경국장을 지낸 후 1881년에는 뉴욕주의 버팔로시장에 당선되었다. 그 당시 미국의 지방 정부들의 부패가 아주 심했을 때이었는데 Cleveland 는 그런 풍조에 물들지 않고 시의회가 정실에 흐르거나 낭비적인 조례를 통과시키는 족족 시장의 거부권을 행사해서 “Veto Mayor” 란 별명을 들을 정도의 개혁정치가로 명성이 났다.


부패와 무능이라는점에서는 지방정부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뉴욕주정부의 개혁을 주창한 민주당에서는 개혁정치인 Cleveland 를 1882년에 주지사로 내보내서 압도적인 표차로 주지사에 당선시켰다. 그는 정치개혁을 열망하던 주민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당시 뉴욕시와 뉴욕주 정부를 휘어잡고 각종의 부정사건들의 배후에 있었던 자기의 정당인 민주당 내의 Tammany Hall 이라고 불리던 막강한 계파와 정면으로 대립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야당인 공화당의 24살 짜리인 당돌한 Theodore Roosevelt 주하원의원이 뉴욕시의 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법안을 발의하자 그 법안들이 입법되도록 후원하여 뉴욕시 부패소탕을 도왔다. 개혁과 보수의 대결 속에서 승리한 Cleveland 는 시장에서 불과 3년만 에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미국 역사상 최 고속으로 빨리 출세한 정치인이 되었다.

선거운동 중 총각때의 품행이 좋지않았던 여성과의 외도때문에 그가 “부도덕적인
주정뱅이” 라는 공화당 측의 흑색선전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Cleveland 는 청렴, 개혁” 이며 “Blaine 은 부패, 보수” 라고 알려졌으며 Blaine 을 지지한 어느 개신교 목사가 Blaine 도 참석한 장소에서 “민주당은 3R’s (Rum, Romanism and Rebellion)의 정당” 이라고 비난하자 도리어 역효과가 나서 음주를 잘하는 아이리쉬 계통의 로만 가톨릭 신자들은 민주당 쪽에 투표를 했다고 한다.

진흙탕 속의 싸움같은 선거에서 Cleveland 는 국민의 실 투표수로는 2만9,000표 차이로 겨우 제2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만일 뉴욕주 에서 600표만 Blaine 에게 더 갔으면 선거인단 표수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통령선거에서 Blaine 이 당선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Cleveland 는 대통령 취임후 첫 2년 동안에 별로 뛰어나게 내놓을 치적은 없었다. 첫째로 야당인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당이라 타협이 어려웠었고, 둘째로 Cleveland 는 대통령의 역할은 너무 activist 이어서는 안된다는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선도적 활동이 미약하였으나 다행히 국회가 앞장서서 미국의 산업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했던 Interstate Commerce Act 를 입법하여 연방정부에게 점점 횡포가 심해져가기 시작한 독점적 철도회사들의 독점횡포를 단속할 법적근거를 마련해주고 ,
이 법을 집행할 부서로 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 을 신설하였다.

미국은 “독립국가 라고 자처하고 있던 주들”이 연합하여 “미국합중국” 이라는 “Super 국가”가 건국된 이유에도 각 주가 “국가주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착각하는 혼선이 있었다. 주마다 비즈니스 법들이 달라서 계약과 통상에 지장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주마다 도로하중 허용중량이 달라서 1970년대까지도 주 경계선에 weighing station 을 설치해 놓고 트럭의 총중량을 잰 후 중량이 초과되면 화물을 몇 개 내려 놓아야 통과시켜주는 웃지 못할 주권 남용도 해왔다. 통상이 주의 경계를 넘을 때에나 연방법률이 작동할 수 있지 주내의 모든 통상은 철저히 주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도 공화당 쪽이 자주 거론하는 “State Right, State Sovereignty” 라는 것들이 미국의 이러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래 전에 실제로 뉴욕시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엘리베이터 종업원들의 파업이 있었을때 연방법원이 개입하려 하자 “Elevator 는 상하로만 움직이지 좌우로는 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방법의 적용을 받지않는다” 라고 주장했으나 연방법원은 “그 건물에는 층마다 다른 주에서 나온 회사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주간의 통상이 이뤄지고 있다” 라고 반박하면서 연방법을 적용한 적이 있었다.


대재벌 라커펠러가 “무자비한 경쟁과 독점”으로 미국 정유산업의 90%를 점유하는 스탠다드 오일 회사를 무적의 독점기업으로 키워갈때 썼던 아주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가 철도회사들을 위협하여스탠다드 오일에게 특혜적인 할인운송료를 적용하도록 하거나 서류상으로는 정상운송료를 내기로 계약한 후 리베이트를 받도록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불공정거래를 파악한 Illinois 의 Shelby M. Cullom 주지사는 이러한 관행을 Illinois 주내 에서는 강력히 단속하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관행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어서 한 주의 힘으로는 초거대 독점기업을 상대로 싸워 볼 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Cullom이 연방상원의원이 된 후 Cleveland 가 대통령이던 1887년에 Interstate Commerce Act 를 입법하였던 것이다. 이 법은 많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가 독점기업들의 단속을 위해 제정한 최초의 법률이라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이 법으로 철도회사들은 특혜적인 이중운송료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되었으며 거리에 따라 운송료를 부과하되 어느 지역에 철도회사가 철로를 독점하는 경우에도 폭리를 취하는 운송료 부과를 금지 하였고, 운송료를 공개적으로 명시해야 하며 아무 때나 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 이 철도회사의 준법여부를 감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법의 제정과정에서 초대형 독점기업 들이 자행했을 방해과정을 상상만 해보아도 이 법이 미국역사의 전환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I.C.C. 는 추후 버스와 트럭운송, 철도역, 항만, 전신, 케이블까지 관여할 수 있도록 되었다가 1995년에 타 부처들로 권한을 이양하고 폐지되었다.
1886년에 모든 남북전쟁 참전자들에 대한 은퇴연금 법들이 쏟아져 나오자 세출의
격증을 우려한 Cleveland 대통령은 그 법들을 전부 veto 하였으며 1887년에 전쟁에 90일 이상 참전한 사람으로 형편이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연금법이 제정된 것도 신청자들이 사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veto 하였다.

마지막으로 Cleveland 대통령은 임기말인1887년 12월에 국회에 보낸 연두교서에서 크게 감세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때 한해의 세입이 세출을 1억 달러 정도로 초과되는 이유가 세입에 포함되는 일종의세금인 관세의 과다한 부과에 있다고 지적 하면서, 국제무역에 지장을 주는 관세를 인하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제안은 공화당의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1888년의 대통령선거에 가장 중요한 선거쟁점이 된다.

미국에서 수입관세는 특별하고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유발한 이유 중의 하나가 과다한 수입관세의 부과이었다. 영국이 식민지 미국을 최대로 착취하기 위해서 미국에 수입되던 모든 물자에 관세를 부과하였는데 미국사람들이 마시던 차에도 고액의 관세를 부과해서 원성을 받았고 처음 영국에 저항하는 민중봉기로 일어난 사건이 인디언으로 가장하고 배에 올라가 수입차 뭉치들을 보스턴 바다에 던져 넣은 Boston Tea Party 사건이다.

수입관세는 한동안 미국의 세입 중 제일 큰 항목이었던 까닭에 각 항구도시에서 가장 큰 연방정부 건물이 세관건물이었다. 수입관세는 미국의 국산품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어서 공산업자들과 노동단체들이 고율의 관세를 지지하였으나, 미국산업자들의 국제 경쟁력을 도리어 약하게 만들었고 , 다른 나라들의 대미 보복무역관세를 초래하기도 하여서 미국역사상 계속 정치논쟁의 쟁점이 되어오는 난제이었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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